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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희작 Jul 20. 2023

그림자

마주할 것인가, 감출 것인가.


그림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릴 적 즐겨하던 ‘그림자밟기 놀이’가 생각난다. 상대의 그림자를 밟아 탈락시키는 단순하고도 짜릿했던 그 놀이.

어린 나에게는 오로지 빠르게 도망가는 것이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그저 냅다 뛰었다. 상대에게 밟혀도 깔깔거리며 웃기 바빴다.

승패를 떠나서 놀이 자체가 너무 재밌었으니까.


바닥을 냅다 뛰어다니기엔 체력이 바닥난 어른이 된 지금, 다시 그림자놀이를 한다면 분명 가까운 나무 혹은 건물 그늘 아래로 들어가 내 그림자를 숨길 것이다. 감추는 것이 도망보다는 안전할 것 같아서.


이 영리한 전술은 분명 친구들의 감탄을 얻을 수 있겠지만 동시에 고독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친구들은 사라진 나의 그림자를 포기하고 또 다른 그림자를 찾아 내 곁을 떠날 테니까.


‘그림자놀이에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것.‘


이것은 그림자놀이의 진정한 의미가 사라진 ‘game over'를 의미한다. 그늘로 숨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사람은 상대에게 밟혀 죽은 게 아니라 결국

‘외부의 그늘로 들어가 자신을 고독사 시킨 것‘이다.


우리는 가끔 다른 그림자에 자신을 숨기는 이 영특한 전략처럼 내가 갖고 있는 고유의 모습을 숨기고 타인이 만든 기준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안정감을 느끼려고 한다.


과연 이 전략은 영원한 안전성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내린 정답은 'No‘.

나를 둘러싼 ’그 그늘‘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외부의 그늘에 끌려다니고, 이렇게 남에게 의지하는 방식으로 ‘안정‘을 쫒다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불안정’에 쫓기게 된다.


타인에게 무참히 밟힐지언정 나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만이 외부와 완전히 독립된 진정한 자유와 안정을 얻는 길이라 굳게 믿으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
그늘로 숨지 않고
깔깔대며 도망 다닌
자유롭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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