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건
항상 있어와서 너무 익숙하다
나의 예민함도 항상 나와 함께였다
그래서 누구나 같은 줄 알고 살았다
나는 타인의 감정이 폭풍처럼 다가온다
대학생 때의 일이다
어떤 여자 후배가 주말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간 이야기였다
난 웃는 후배의 얼굴에서 미묘한 슬픔을 봤다
특히 말을 할 때 '아빠'라는 단어를 강조함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저 친구는 엄마가 없는 건가?
나중에 좀 더 친해지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 친구의 힘든 청소년기의 이야기를
난 상대방의 미묘한 감정을 읽는다
상대방이 능숙하게 감추려고 해도 느낀다
물론 내 착각인 경우도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타인의 감정이 폭풍처럼 다가온다
결국 난 매 순간마다 도덕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
상대가 힘든데 모른 척할 거야?
상대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냥 힘든 걸 감추고 나와 웃으며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면 그냥 나도 웃으며 이야기해 주면 그만이다
상대는 그걸 원했으니까
주제넘게도 나는 타인의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과도하게 몰입하고
과도하게 죄책감을 갖는다
어느 순간부터 가면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더 분명하게 내가 가면을 쓴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내 기준은 명확했다
내가 대가를 받기 위한 관계와
대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구분했다
난 직장에서 아무리 진상고객을 만나도
크게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고객은 내가 대가를 받는 관계이기에
나는 가면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인의 작은 말 한마디에
나는 큰 상처를 입었다
가면을 쓰지 않았을 때 나는
그만큼 예민했으니까
그러다 알게 되었다
타인의 감정은 타인의 것이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숨기고 있는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내가 본 게 사실이 아닐 수 있고
설사 맞더라도 그들은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이니까
답은 각자에게 있다
단지 가정이 조금 다를 뿐이다
난 그저 같이 웃으며 오늘을 살면 된다
그렇게 가면을 벗는 시간도 자유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내 감정으로 가랑비처럼 나를 채워간다
나의 감정으로 나를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