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 4가지
BGM : This is me - Keara Settle, The Greatest Showman Ensemble
나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일생을 걸쳐서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
반복되는 패턴을 찾은 덕에, 드디어 내가 해야 될 노력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를 향한 ‘못났다, 너 왜 이거밖에 못해’라는 비난을 거두자.
나를 연민하는 마음을 피하지 말고, 긍정하자.
‘내가 원하지 않은 환경에서 컸고 원하지 않은 부모를 만났지만 내 잘못은 아니야. 내가 참 안 됐다. 참 힘들게 살아왔다’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바탕으로 자기 연민을 사용하자.
이럴 때, 자기 연민은 적절한 감정이다.
내가 나를 보듬을 수 있어야 타인과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나 이렇게 컸어, 나 원래 이래. 어쩔 거야.’라는 태도는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태도다.
내 상처를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합리화하기보단, 나와 타인을 모두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자.
나한테 결핍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누군가에게서 채워지고 싶은 감정이 있는 걸 알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건 천지차이다.
내 안에 채움 받고 싶은 감정이 있다는 걸 알고 살자.
긴밀하게 친해진 선배, 후배, 애인, 친구 등 정말 사랑을 받고 싶은 대상 친밀하고 안전한 사람, 안전한 관계일 때, 그 감정을 채워 주기 바라는 건 적절하다.
그 사람에게 ‘나는 이럴 때 좀 속상해. 이런 건 좀 이해해 줘.’라고 말하는 용기를 낼 때,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축적됐을 때, 비로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인생을 더 잘 살고 자식의 입장에서 키워줬으면 좋겠지만, 그들은 그들로서 최선을 다했다.
죄책감을 갖지 말자.
‘잘못했다. 부모는 당시에 나에게 다르게 했었어야 된다.’는 마음은 가져도 된다.
‘내가 지금 누르고 있는 분노가 있구나. 살아오면서 크게 좌절하고, 많이 속상했던 감정이 내 마음에 남아 있네. 되게 오래된 묵은 감정이구나.’라고 알아차리자.
‘내가 이런 마음으로 아직 있구나.’라고 생생하게 상처받았던 기억들을 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나는 누군가가 허락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게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겐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그 자체로 고귀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 생명을 함부로 해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앞으로 하는 모든 선택은 타인의 허락과 허용을 구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자.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걸 기억하자.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도 그렇게 나쁘지 않네, 나 좀 괜찮네. 누가 나를 도와주지 않아도 살 수 있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쌓자.
나중에는 ‘그때는 최선이었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잘못했네. 다음에 좀 더 잘 선택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선택할 기회가 되면 또 신중한 선택을 하고 선택을 책임지게 된다.
이런 과정과 경험이 쌓이면, 내가 그것을 한계를 인정하든 포기를 하든 ‘하는 데까지 해보면 답은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점점 자신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감당하면서 살 수 있게 된다.
이때 정말 자존감이 생긴다.
내 안에 사랑받지 못한 어린아이를 사랑해 주어야 인간관계가 편안해진다.
그전에 내가 나를 혐오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어야 사랑을 제대로 줄 수 있다.
감정기복이 심해지기 전에, 매일 순간순간 나를 관찰하고 돌보자.
일상에서 그냥 기분이 안 좋다고 느껴질 때 계속 나를 관찰하고 돌보자.
감정 일기를 쓰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
현재의 나를 미워하지 말자.
현재의 상황들을 과거의 묵은 감정으로 내가 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과거로부터 온 것이란 걸 기억하자.
감정은 우리에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수단이다.
그 감정을 회피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그 감정을 나를 돌보는 기회로 삼자.
내가 부모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검토하고, 표현하자.
지금의 내가 그것을 들어주고 해소해 주자.
내가 나의 내면의 양육자가 되어서 따뜻하고 너그럽게, 내면 아이를 안아주는 것부터 시작하자.
혐오와 분노, 무서움이 올라와도 그런 마음도 그대로 품자.
괴로운 것도 충분히 떠올리자.
내가 나의 따뜻한 양육자가 되어서 괴로웠던 모습도 그대로 ‘괜찮아. 충분히 괴로울 수 있지.’하면서 받아들이자.
내가 밉더라도 받아들이고, 위로해 줄 때, 근원적인 수치심이 줄어든다.
나의 감정과 불안,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자.
내면아이를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줄 때, 근원적 수치심이 녹는다.
진짜 나를 다 받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수치스럽지 않다.
어떤 못난 모습, 솔직한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다.
수치심이 어느 정도 녹아지게 되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기승을 덜 부린다.
그때의 나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자.
사랑받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안쓰럽게 여겨라.
모든 건 자기 연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를 안쓰럽게 여길 수 있어야 나와 화해할 수 있다.
그 작업을 내가 나에게 꾸준히 해주자.
내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해지면, 근원적인 수치심이 오히려 올라올 수 있다.
성격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으로 구성된다.
전부 한꺼번에 고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씩 다듬어간다고 생각하자.
그런 나를 비난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자기를 버린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사람을 이상화시키는 경향이 더 크다.
잘 모르고 하는 행동이고, 자기 자신이 살아온 생존 방식에 가깝기 때문에, 안다고 해도 조절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이제는 이걸 내려놓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잘하고 있는 거란 걸 항상 마음에 새기고 포기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