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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May 17. 2016

30년 만에 찾아온 그곳, 518

아직 끝나지 않은 민주항쟁, 광주 518 국립묘지


연휴 전날 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겨우 도착한 광주는 이미 한 밤중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친구는 의외로 담담하게 문상객을 맞고 있었고, 다행히도 우리 말고도 늦게 도착한 팀이 여럿인 듯하다. 늦은 저녁식사, 소주 몇 잔을 반주로 기울이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아재들의 수다가 이어진다. 경상도 토박이임에도 박정희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가족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광주와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싶다. 골프 약속, 아직 어린이가 있는 집, 이런저런 이유로 같이 떠들던 친구들은 모두 밤길을 달려 돌아가야 했고 나만 광주 어딘가의 번화한 모텔촌에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모텔을 나와 망월동 묘지로 가는 교통편을 검색했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해서 시내 어딘가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된다. 5.18 민주묘지로 향하는 버스는 518번이다. 518이라는 숫자를 달고 오늘도 광주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518 묘역을 둘러보며 찬찬히 묘비를 살펴본다. 80년 이후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 5.18 유공자로 인정되신 이후 돌아가신 분들인가 보다. 묘역 한편에 비어 있는 묘역도 있다. 생존해 계신 유공자들을 위한 공간. 아직 5.18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 날의 처절함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아직 많다.









비어 있는 묘역을 보면서 5.18을 30여 년 전의 일로만 기억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5.18의 원한과 과제는 과거의 일로 추억하고 추모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어느 한 정당에게 책임을 지울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어찌 되었건 이 땅의 민주주의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있는 우리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슬픔이고 책임이다.








5.18 묘역을 뒤로하고 구묘역을 찾았다. 지금의 국립묘지가 마련되기 전 희생자들이 안장되었던 곳, 지금도 광주시민들의 영면의 장소이다. 입구 왼편으로 '5.18 정신계승 민족민주열사 유영봉안소'가 마련되어 있다. 이 곳에서 낯익은 이름들을 만나면서 또다시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이한열, 이재호... 대학시절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 이름들... 광주 출신들이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87년 6월의 외침이 생생하게 귓전에 울려 퍼진다. 이제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의 나약함을 꾸짖는다.


















5.18 묘지를 향하는 518번 광주 시내버스, 시내를 가로지르는 518번 버스를 타면서, 혹은 스쳐 지나가면서 그들은 80년의 광주를 지금의 광주와 겹쳐 놓고 있을 테지. 80년 5월을 잊지 않겠다는 광주시민들의 다짐이기도 하고, 5.18을 현재로 끌어당겨 오는 타임머신이다. 518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오는 동안 잠시 신림동 허름한 주막집에서 나지막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대학시절로 돌아가 본다. 86년 5월의 아크로폴리스, 87년 6월의 명동성당, 학생들 고생한다며 팔던 수박을 썰어주던 남대문 시장의 노점 아저씨... 


518은 아직도 전남도청 건물을 지나 금남로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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