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 스타즈
○ 문제의식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의 인도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봤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못하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는 게 공부가 더 잘된다고 느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을 공부가 잘 돼서 기분이 좋아진 것과 혼동한 결과라고 한다. ‘아 이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알려줬을 텐데’ 생각했다. 그런데 연이어 떠오른 생각은, 그런다고 내 말을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한다.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주어진 자료를 합리적으로 종합해 논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심적 노력을 덜 들이면서 빨리 판단한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편견이 생기고 나아가서는 확증편향을 가진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흔히 틀린 사실을 굳게 믿을 때가 있다. 팩트와 상관없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심지어는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 틀렸다는 것을 알더라도 수정하지 않고 그냥 하던 대로 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법에서 말고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래된 논쟁이 있다. 바로 성선설 vs 성악설이다. 굉장히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철학 주제지만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인간은 이런 존재야’라는 인간관을 가지기에, 주변사람들과 가끔 이야기 나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지금껏 한 번도 합의에 도달한 적은 없었다. 니 생각도 맞고, 내 생각도 맞다는 식으로 결론 내리기만 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걸까, 아니면 진짜 정답이 없어서일까?
○ 학자의 대답 : 인간에게 선하거나 악한 본성이 있을까?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5」, 우한기, 휴머니스트 / 일부 발췌
본성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성선설’과 ‘성악설’ 따위를 주장한다. 이 문제를 다룰 때 특히 주의해야 할 게 있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게 있을까? 그렇게 선하거나 악한 본성을 타고 나는 걸까? 그걸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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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유명한 사람들이 별 근거도 없는 이런 주장을 폈을까? 그들이라고 본성을 확정 지을 자격이 없다는 걸 모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성선', '성악' 운운하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다. 가령 인간의 본성, 즉 사람의 자연적 상태가 악하다고 치자. 그러면 바람직한 사회는 가능한 한 자연에서 멀어진 상태, 즉 문명 상태가 될 거다. 그 문명은 자연 상태를 최대한 억누르는 것이겠고. 각종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사람의 사악한 본성이 힘을 못 쓰게 만드는 상태가 최선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성악설은 공권력을 긍정하든가, 아니면 이기적 본성이 합리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시장에 주목하게 된다. 반대로 성선설이라면 어떨까? 성선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당연히 사람의 자연 상태를 긍정할 거다. 무엇이 사람의 선한 본성을 훼손했을까? 당연히 인간 문명이 그렇게 했을 터다. 이들은 문명을 '인위적 장치'로 보고, 그 인위가 사람의 자연 상태를 오염시켰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반문명적 발상에서 원래의 자연 상태를 회복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선한 본성을 일깨울 교육을 강조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무지무욕'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본성론이 도출되는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본성론을 펼치는 사람들의 설명은 인간 본성에서 출발한다(본성→사회). 그러나 그들의 탐구는 정반대다(사회→ 본성). 그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먼저 염두에 두고 그것을 역추적해서 인간 본성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거다. 만약 그들이 현 질서를 긍정하고 지금의 상태가 더 정교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대체로 인간 본성을 악하다고 할 거다. 반대로 현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대체로 인간 본성을 선하다고 볼 거다. 이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가? 인간 본성론은, 사람의 본성이란 게 원래부터 있어서 나온 이론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 대한 자신의 판단, 자기가 사회를 보는 눈을 반영하는 이론이라는 거다.
○ 해석
세계관이 인간관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그에 따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니 말도 맞고, 내 말도 맞고’ 하면서 끝났던 것이었다. 세계관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설명이 있다. 정의(Justice)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얘기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 말 그대로다. 특정 사안에서 평등함을 기준으로 정의를 판단해야 한다는 관점과 반대로 차등을 중심으로 정의를 평가해야 한다는 관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난민 문제에 대해서 “난민 보호는 지구촌 시대의 공감과 연대의 실천”는 입장과 “난민 보호는 국가의 비용 증가, 사회 불안 조성”입장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모든 사람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평등함을 강조하고, 후자는 자국민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차등을 강조한다. 어디까지를 같다고 볼 것인지, 다르다고 볼 것인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
배움은 예측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아주 기대한 강연, 수업, 모임에서 배울 게 없을 수도 있고 어딘지도 모르고 친구 따라갔던 자리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생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배움에는 미리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게 중요하다. 말이 쉽지, 기대와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는 내가 뭘 배울 수 있는지는 생각조차 안 하게 된다. 시작하자마자 그만두지 않으면 다행이고, 꾸역꾸역 억지로 하게 된다.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재미없다’, ‘내 취향 아니다’ 말고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일단 좀 버티면서 충분히 콘텐츠를 경험하고 나면 감상이 생긴다. 물론 부정적일 때가 더 많다. 어떨 때 선입견이 발동하는지, 나는 왜 이런 배움에 관심이 없는지, 나는 왜 이런 것을 못 견디는지 등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주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배움을 얻고,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점을 매력으로 느낄지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험에서 내가 깨달았던 것은 원하는 가르침이 있을 때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배우려고 했을 때 뭔가가 남는다는 것이다.
성선설, 성악설 논쟁은 정답이 없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주제기 때문에 니 입장도 맞고 내 입장도 맞다. 땅땅땅. 지금까지는 이렇게 결론을 내려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취향에 맞지 않는 게임을 하면서 새로운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결론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그 게임을 소환한다.
이름 : 베리드 스타즈 (BURIED STARS) / 12세 이용가
제작사 : LINE GAMES
장르 : 텍스트 어드벤처
출시일 : 2020년 7월 30일
*게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른 사이트를 참조하세요
"누구든 진실된 모습을 들키지 않고 두 개의 가면을 쓸 수는 없다."
일반인 서바이벌 오디션 "베리드 스타즈"의 네 번째 시즌 본선. 생방송 중이던 무대가 무너져 출연자와 일부 스탭이 갇히고 만다.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수 시간이 걸리는 상황, 바깥 상황을 알 방법은 협찬용 스마트워치 뿐이다. 스마트워치로 접속한 SNS를 수놓은 걱정과 응원, 비난과 조롱 속에서 누군가는 내부의 생존자와, 누군가는 외부와 커뮤니케이션하며 구조를 기다린다.
그때, SNS에 나타난 익명 계정은 죄값을 받으라며 살인을 예고하고 생존자들은 분열과 궁지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데...
생존자들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정체불명의 살인범은 누구이며,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
생존 게임의 끝에서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시놉시스
나는 개인적으로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공인으로서 사는 것이 굉장히 피곤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나(주인공)는 연예인 지망생이다. 여기서부터 미스매치였다. 내가 별로 관심 없는 상황과 캐릭터라서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말로 모든 것을 풀어가는 텍스트 어드벤처인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다른 캐릭터들의 호감도를 얻는 것도 기준을 알 수 없었다.
게임에서 점점 마음이 멀어져 가는 나를 돌려 세운 것은 페이터였다. 아마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합쳐서 명명한 게임 내의 sns다. 작동원리는 거의 트위터와 비슷하다. 페이터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글은 게임을 전개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는 sns 세계의 모습을 굉장히 그럴듯하게 담아냈다. 극성팬, 안티, 어그로꾼, 루머꾼, 악질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온다. 발언들이 조금 과하게 느껴지다가도 sns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게 된다. 무대가 무너져서 가수와 스탭이 갇히게 된 상황에서, 안전을 걱정하는 반응도 있지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혼란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으로 연예인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됐다. 하다 보니 연예인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공적인 존재였다. 악플에 대해 대응을 안 하기도 억울하고, 그렇다고 하면 더 얘기가 커질까 봐 곤란하다. 평소의 나의 모습과 만들어진 이미지 사이에서의 정체성 혼란, 사람이 가장 큰 힘의 원천이면서도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의 숙명, 나는 모르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이 사적영역을 캐내고 침범할 때의 두려움, 아마도 연예인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대중들의 이중성을 보며,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헷갈리는 포지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진 공연장 안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페이터로 낮은 순위부터 죽이겠다는 살인 예고가 온다. 다들 처음에는 어그로꾼인줄 알고 무시한다. 그런데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공연장 내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하는 두려움과 혼란이 시작된다. 주변에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안 보인다. 이제 함께 갇혀 있는 사람들이 의심스러워진다. 주인공인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모두를 의심만 해서는 멘탈이 나가버린다. (게임 내 멘탈상태 수치가 있어서 0이 되면 게임오버가 된다) 누가 범인일 것 같은지 나름 판단해서 그 사람을 몰아붙일 수도 있지만 심증일 뿐이다. 사람을 의심하자면 끝도 없고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다 같이 안전하게 버티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혼란과 갈등이 계속 커져간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어차피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으니 이제 질문을 바꾼다. 의심하는 게 나을까, 믿는 게 나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의심하는 것보다는 믿는 게 멘탈에 좋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에 대답하는 것과 비슷해졌다. 옳고 그름을 가릴 명백한 근거는 없다. 질문을 바꿨다. 인간을 선하게 보는 게 나을까, 악하게 보는 게 나을까. 이제 기준은 어떤 선택이 더 마음을 편하게 하냐이다. 연예인이라면 인간을 선하게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대중의 관심이 중요한 일인데 항상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면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하는 교육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의 가장 기본 전제는, 교육을 통해 인간이 변화·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생각보다 이런 일이 많지 않을까? (경찰, 검찰, 판사처럼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의심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항상 그렇지만 특별한 결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는 대로 믿을 때가 있지만, 믿는 대로 봐야 할 때도 있다.
- 베리드 스타즈
* 내용 참고
유튜브 : [최강1교시] Full ver. 판단과 의사결정에 숨은 심리 I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시민의 교양」,채사장, 웨일북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허진만 외, 경기도교육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