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잎이 물들어 간다
비로소 물이 든다
바람은 전생을 노래했고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의 환영들은
가슴에 점점이 박혔다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거나
사철 푸르게 초록을 자랑하거나
그렇게 배웠다
그게 나무의 쓸모라고
바림이 불고 비가 내리고
천둥 속에서 벼락 속에서
이 비 그치면 꽃 피우리라
꽃 피워 열매 맺으리라
그러나 내 몫이 아니었던 영예
더 이상 꿈꾸지 않으리라
고집스럽게 버티던
초록 의지도 놓아버리고
오직, 고요 속에 잠들 즈음
배시시 웃는 햇살을 처음 본다
늘 말 걸어 온
햇살의 이야기를 그제야 듣는다
물이 든다고 네가 사라지는 건 아니란다
햇살이 오면 햇살을 껴안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렴
잎잎이 물들어
있는 그대로 어우러 빛나는,
비로소 보이는 생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