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삶 중 가장 큰 전환기
우리나라의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의 교육을 이른다. 초6에서 중1로 넘어가는 때가 아마 학생의 삶에서는 가장 큰 전환기일 것이다. 나는 중입 근거리 배정 원칙에 따라 우리 동네 남녀공학 공립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예비소집일 날, 우리 집을 기준으로 초등학교와는 정반대 편에 있는 중학교는 가는 데만 걸어서 40분이 넘게 걸렸다. 초등학교에 비하면 거의 두 배이다. 중학교로 가는 길은 너무나 생경했다. 매일 다니던 동네 시장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골목길로 가는 건데도, 낯선 나라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온몸을 휘감는 이질감에 걷는 내내 아랫배에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한겨울인데도 내 이마는 기어이 식은땀을 쥐어 짜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고인 땀을 스치면 뒷덜미가 미칠 듯이 서늘해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은 죄다 회색 빛깔이었다.
걷고 또 걸어서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눈앞의 잿빛 아스팔트 길은 노랬다가 다시 회색 되기를 반복했다. 먹은 것도 그다지 없는데 당장이라도 토할듯했다. 어질어질한 머리통을 겨우 부여잡고 교문에 도착하니 하교하는 중학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전신을 휘감은 짙은 교복과 두꺼운 흰 양말 위를 점령한 검정 단화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키와 얼굴은 제각각 다른데 입은 옷과 신은 놀랍게도 다 똑같았다. 중학생 언니들은 모두 다 귀밑 3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똑 단발로 얼굴 크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학생 선도를 표방한 복장 규정은
세상의 어떤 예쁨도 못남으로 바꾸는 술책이 분명했다.
못남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무서운 선배 무리를 피해 슬금슬금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중학교 운동장에는 그 흔한 철봉도 없었다. 미끄럼틀, 정글짐, 시소, 그네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휑한 운동장 가운데에는 어깨가 한껏 움츠러든 신입생들만 도열하였다.
대머리 남자 선생님은 한동안 꽥꽥대며 큰 소리로 훈계하셨다. 이 추운 날씨에 머리가 얼마나 추우실까 걱정을 하다 보니,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예비 신입생들은 1층 교실로 들어가 반편성고사를 보았다. 중학교 1학년 학급을 편성하기 위한 진단평가였고, 시험 범위는 초등 6학년 교육과정 내용이었다. 다행히 교실은 참 따뜻했고, 책상 앞에 앉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험지의 글자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두려움을 떨친 뇌는 릴레이 선수처럼 손으로 바통을 전달했다.
답안을 채우는 연필 소리로 꽉 찼던 두 시간이 끝나고, 도망치듯 부리나케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2월 말까지, 나는 매일마다 꿈에서 중학교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