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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로 May 21. 2024

소설 속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

삶과 소설

삼국지소설의 첫문장은 아마도 많이들 아실겁니다. 꽤나 첫문장이 인상적인 책들중에 삼국지도 많이 포함이 되죠. 그 문장은 아래와같습니다.

천하대세 분구필합,합구필분.
'무릇 천하의 대세란 오랫동안 나뉘면 반드시 합하게되고, 오랫동안 합쳐져있다면 반드시나뉘게된다'

과거시험에 낙방했다하나 나관중은 분명 문장에 조예가 있는 이야기꾼이 틀림없습니다. 역사에 길이남을 대하소설의 시작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않을까요. 이렇게 시작하는 삼국지 소설은 유관장형제와 조운과 공명등의 인물들과 함께 신명나게 달려갑니다만, 중후반에는 그 신명이 점차 줄어들고 마지막즈음에는 간신히 끌려가는 늙은 노새처럼 그저 글에 이끌리다 책을 덮게 됩니다. 장대한 첫 문장은 많은이들이 기억합니다만 그 끝이 어땠더라.. 다시 한번 책을 들춰보아야함은 꼭 저뿐만이 아닐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삼국지연의의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끝날까요. 굉장히 긴 시로 끝이납니다.

 한고제가 빼든 칼로 함양을 들이치고 불타는 붉은해는 부상에 뜨고... 어쩌고 긴 시죠. 초한지속 영웅이었던 유방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 시는 마지막에 이렇게 끝이납니다.

'복잡한 세상사 끝이있을쏜가
운명은 하늘의뜻 혜량할수없어 도망할 길없다
천하삼국쟁패는 이제 한바탕 꿈으로 돌아갔거늘
후세들은 애상을 핑계로 부질없이 떠드네'

번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정도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왜 뇌리에 깊이 남아있지않았을까라는 의문도 들죠. 왜 기억이 희미할까.

나이를 점차 먹어감에 따라 느끼는것은 인간은 결국 '시야'에 갇힌 존재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야는 그저 우리 신체, 오감으로 직접느껴봐야만 알 수 있는것들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유하는 저변의 모든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9살때 보던 동물의 왕국 다큐 속, 가련한 사슴을 잡아먹는 표범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린이는 서른이 훌쩍넘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표범에게도 사정이 있다는것을 깨닫는일은 세월이 주는 자연스러운 어떤것 중 하나일것입니다. 시야라는 것은 이런것들의 사소한 종합이라 저는 감히 생각하고있습니다.

저에게 삼국지 마지막 문장 몇구절들이 새롭게 다가오던 시기는 고민이 많을때였습니다. 인생에는 평탄한 길도 있지만 험로도 반드시 있는법이죠. 질곡이라는 단어가 인생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할겁니다. 삼국지의 마지막 문단은 제가 험로를 걷던 시절이되어서야 비로소 저에게 생명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시점 이후로는 저 마지막 문장이 첫문장만큼이나 깊이 마음속에 남게되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맞다보면 지난날의 많은것들이 결국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되고, 집에오는 길에 문득 보이는 노을빛을 보며 시간이 흘렀음을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세월은 모두를 공평하게 어루만지다보니 마음에 쌓이는 더께만이 제 역할을 하여 지난날의 상처를 그저 웃어넘길수 있도록 만드는것이죠.

인터넷 커뮤에서 유명소설의 첫문장이 유행처럼 번지던때가 있었던것을 기억합니다. 그 글을 누가 처음 만들어 올린것인지 알 수는 없는노릇입니다만, 어쨌든 그 문장들이 많은사람들 마음속에서 생명력을 부여받았기때문에 회자 되는것이 아닐까합니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떤시점 '시야'에 그 문장이 새삼 눈에 들어오는것이고, 좀 더해서는 그 문장에 자신을 포개어보기도 하는것이죠.

저는 고단한시절 삼국지의 마지막 구절에 저 자신의 고민과 욕심을 투영시켜본적이 있어 유명하기짝이없는 삼국지 끝 문장을 되짚어봤습니다.

소설은 첫문장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쉼없이 달려 마지막문장이라는 이름의 죽음으로 끝맺음하는것이 사람의 일생과 닮았습니다. 처음과 마무리가 좋은 글과 시작과 끝이 좋은 사람의 자취가 오래간다는 것도 비슷하겠네요.

귀인을 만나는것만큼 힘든게 귀한글귀를 만나는것입니다. 그나마 귀인은 동서남북 어디에서든 온다고 하지만 귀한글은 오로지 마음속에서만 깨우쳐지는 바,
어느 누구든 '나'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는 문장 몇개정도는 품고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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