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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Jan 11. 2021

17. 다시 두물머리에 서다


북극 한파가 내려선 호수 얼음 위로 하얀 물안개 마냥 어스름이 비켜 내린다. 


1년 전 이 곳에 다녀온 기억이 여명을 스치며 추운 허리를 움츠리 듯 낮게 퍼진다. 찬 바람은 그때보다 훨씬 매섭다. 며칠 전 흠뻑 내린 눈으로 강 너머의 줄을 지어 선 산등성이들은 하얀 무명옷으로 단장하고 있다. 이제 땅은 눈으로 뒤덮이고 얼어붙은 강물은 모든 걸 꽁꽁 얼려 감추고 있는데, 새 한 마리는 새끼를 주려나 하릴없이 먹잇감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하며 날아다닌다. 


이 새벽, 두물머리는 깊은 겨울 풍경이다.



2021. 1. 11 새벽, 두물머리에서



작년에 찾은 두물머리는 강물이 얼지 않았는데 코로나로 얼어붙은 세상처럼 올해는 꽁꽁 얼어 그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있는 듯하다. 눈길은 멀리 팔당호 중앙에 자리 잡은 조그만 섬으로 향한다. 원래는 누군가의 집을 살며시 안고 있는 얕은 구릉이었을지 모르지만, 팔당호가 들어서며 집은 물속으로 떠나보내고, 혼자만 남겨진 채 몇 그루의 나무만이 위로를 나누는 섬이다. 얼음으로 휩싸인 섬은 걸어올 수 있다고 손짓하는데 흐르는 물이 감싸고 있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2021.1.11. 새벽, 두물머리에서


강과 호수와 산은 같은 장소인데 눈과 얼음은 두물머리의 다른 풍경을 그렇게 내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마음으로 서있다. 1년 전, 지난 직장생활 30년 길의 끝에 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짙은 답답함에 짓눌려 여기에 서있던 기억이 선하다. 그리고 무던한 1년을 보냈고, 이제 설레임의 마음으로 다시 이 곳에 서있다. 호수의 얼음 밑으로 흐르고 있을 강물에 지난 1년간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흘려보낸다. 


앞으로 30년의 생활은 지난 30년의 직장 생활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30년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20대를 돌아보고 여러 선배들의 경험을 반추해 보기도 하며, 나만의 인생 캔버스에 하나 둘 그림을 그려 보았다. 소설 토지를 읽으며 내 안으로 침잠해보기도 했고, 홀로 차박 여행을 하며 스스로에게 온전한 자유를 허락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준비들을 시작했다. 여행 가이드가 돼볼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는 어떨까, 내가 가진 직장 경험으로 강사를 해볼까, 그러기 위해 책을 써볼까, 블로그도 시작할까, 유투버가 돼보는 건 어떨까, 시골 생활을 맛있게 하기 위해 한식조리사를 공부할까. 


1년을 보냈다. 그리고 대부분 다 진전된 결실을 보았다. 그래서 ‘2nd tier N 잡러’의 길을 선택했고 이제 그 길의 시작에 서있다. 그렇게 이 곳 두물머리에 서 있는 나의 1년 전과 지금은 답답함과 설레임으로 대칭되어 있다. 


오직 감사할 뿐이다. 


이제 새로운 30년을 위한 시작점이다. 다시 시작이다. 단지 지나온 30년과 다른 점은 치열함 대신 여유로움에 있고, 세상에 조금 더 유익한 길 이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제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보려고 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라는 두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지난 30년과 앞으로의 30년이 서로 교차되는 내 인생의 두물머리이다. 언젠가 다시 두물머리에 설 때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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