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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Aug 03. 2020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의 슬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무엇 때문에 괜찮지 않은지 알 수 없는 순간.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웃으며 '별일 없는데? 왜 그러지?'라고 말하면서 집에 홀로 남겨질 때는 점점 괜찮지 않아 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작은 루틴들은 점차 무너지면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능률도 예전 같지 않아 억지로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 점차 늘어간다. 나를 가혹하게 밀어붙여도 결과물은 물론 정신상태조차 괜찮지 않을 때, 그때는 병원에 가야 한다. 몸이 괜찮지 않으면 병원을 찾듯, 정신이 괜찮지 않으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야 한다.


 얼마 전 고(故) 구하라 양의 일기장에 관한 기사를 봤다. 일기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괜찮아'였다고 한다. 내가 우울증을 앓았을 때도 늘 입에 달고 다녔던 말 역시 '괜찮아'였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어디 나만 힘든가. 다들 힘들지.' 그러면 누군가도 '아, 괜찮은가 보다.' 그렇게 너도, 나도 괜찮은 줄 알고 넘어가게 된다. 조금 일찍 세상을 등진 그녀 덕에 알게 됐다. 요즘 내 일기장도 어느 순간 괜찮다는 말로 도배되고 있음을.


 우울증 약을 먹은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5월 말부터 증상을 인지하기 시작했으니 코로나 블루라는 병명을 붙이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몇 시간 동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익숙한 공기의 무거움은 20살 때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건 단순한 무기력이 아닌, 우울증의 전조증상이었다. 10년 전의 부모님과 나는 모두 어렸다. 정신과는 무서웠고, 가면 안 될 곳이었다. 한 달이면 털고 일어날 병을 질질 끌어 3년을 안고 살았다. 서른이 된 기념으로 나에게 조금은 다른 선지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 사람이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기실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외래를 예약했음에도 30분을 더 기다렸다. 그만큼 정신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다는 뜻이겠지. 기다리는 동안 병원을 둘러보며 초조함과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정신과 선생님이 날 구원해줄 거라는 희망은 고작 30분 만에 더 큰 불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손톱을 미친 듯이 물어뜯으며 눈물이 나기 직전에 내 차례가 왔다. 종교가 없음에도 선생님을 보자마자 하느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의사라는 직함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뒤에 기다리던 많은 수의 환자들로 면담시간은 10분 내외였지만 손에 약봉지를 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상황은 모두 해결된 것 같았다. 이 조그마한 알약이 뭐라고. 병원을 나서자마자 편의점에서 물을 사 약을 먹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미 완치된 것 같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명의를 만난 건지 아니면 내 플라시보 효과가 어마 무시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날만큼은 괜찮았다. 그리고 정신과 약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가졌다. 일주일 내내 나는 안구건조와 지나친 갈증으로 잠을 설쳤다. 건조함으로 잠에서 깨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가습기를 구입했다. 겨울도 아닌 오뉴월에 생전 처음으로 가습기를 사용했다. 정신과 약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두 번째 외래 날짜가 찾아왔다.


 선생님께 내가 메모해둔 모든 부작용을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냈다. 선생님은 걱정스러우나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증상이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약의 효과는 미적지근했다. 불신이 가득한 나의 긴 불만을 끝까지 들어주시고는 선생님께서 입을 열었다.


"첫날보다 의견을 잘 표현하실 수 있게 돼서 다행이네요."


 그랬다,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초조함에 벌벌 떨던 지난 주보다 나아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약이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증량이 천천히 이뤄져야 하는 까닭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면담은 첫날과 달리 1시간 가까이 진행됐고 끝으로 사람은 죽을 때까지 평균적으로 3번의 우울증을 겪는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지금 겪고 있는 두 번째 우울증만 잘 이겨내면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오직 한 번의 우울증만 견뎌 내면 된다. 그리고 평생 공기의 무거움 따위는 경험할 일이 없다. 전문가가 건넨 예측가능성은 없던 희망도 샘솟게 했다. 10년 전 나는 영원할 것 같은 예기불안에 허덕였는데, 평균이라는 함정은 중요치 않았다. 이런 일을 한 번만 더 견뎌내면 된다는 그 말 한마디는 나를 일주일 더 버틸 수 있게 해 줬다.


 그러나 감정의 널뛰기는 계속됐다.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의 연속이었다. 새벽에 일기를 쓸 때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과연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떤 날은 가만히 있어도 이유 없이 눈물이 쉼 없이 흘렀고, 또 어떤 날은 세계 정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하루는 생명의 은인이었다가, 다음 날은 믿을 수 없는 인간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책상에는 채 치우지 못한 빈 약봉지가 쌓여만 가는데 선생님은 '급할수록 돌아가자'며 초조해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기분전환으로 새 책을 사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서점에 들렀으나 환승구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 식은땀과 함께 호흡이 가빠졌다. 늘 귀마개를 끼고 다님에도 사람들의 소리가 너무 크게 머릿속으로 계속 울려와 더는 걸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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