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냄새
There was always in me, even when I was very small, the sense that I ought to be somewhere else.
- 애너 퀸들런< How Reading Changed My Life>
냄새를 맡으면 잊었다.
어릴적부터 가져온 외로움도
고모네에서 자신을 언제 데려갈지 모르는
엄마를 매일 매일 그리던 그리움도
가끔 꾸던 악몽들 속에서
신기촌을 벗어나면 고모네 집으로 향하는
그 높다란 계단들도
냄새를 맡으면 잠시 잊었다.
어릴적 가끔
석유곤로에 넣을 기름을 사러
고모를 따라 가던 주유소에서 맡던 그 석유냄새
그 석유 냄새를 맡으면 엄마 미용실이 떠올랐다.
지희에게 그 냄새는 그리움의 냄새
애정을 채우는 냄새였다.
외할머니의 추도예배 후
어딜 가도 따라다니는 지희 머리위의
호두 껍데기는 책을 읽어도 숙제를 해도
라디오를 들어도 늘 지희 머리 위에서 떠다녔다.
모두들 지희를 쳐다보며 웃던 장면들
지희 자신의 더벅머리
그 아무것도 지희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미용실에서 숙제를 하다
우연히 석유곤로에 걸려 넘어지면서 옷에
기름이 닿았다.
기름을 닦아내려했는데
코끝으로 냄새가 올라왔다.
어릴적 이 냄새를 맡던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은 호두 소녀가 아니었다.
그냥 지희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옷소매에 석유를 묻혀
냄새를 맡던 지희만의 습관
하지만 겨울이 한참 지나고도
옷 소매에서 석유냄새가 계속 나는 걸
이상하게 여긴 엄마가
결국 지희의 이상한 습관을 눈치챘다.
진료실의 시계 소리가 크게 들린다.
조용한 지희의 심장 소리는 너무 크게 들리는 것 같아
지희는 저 시계 소리에 묻히기를
이 쿵쾅 거리는 심장소리가 부디 의사선생님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제 손만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의사선생님이 부드럽게 말을 건다.
“ 지희야, 석유 냄새는 왜 맡고 있었어?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줄 수는 없을까?“
지희는 자신이 없다.
자기같이 이상한 아이가 하는 말
호두가 되버린 자기 같은 아이가 하는 말을
과연 이 낯선 어른이 믿어줄까..
정말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