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cm 안철민 건축가의 '트리플 더블 하우스'
집이라고 하면
가족들이 거실 테이블에 모여
도란도란 하루의 일을 얘기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단단한 벽, 굳게 닫힌 문, TV를 향한 소파 배치까지. 일반적인 집의 인테리어는 소통을 권장하기보다는 단절을 유발하는 듯하다.
9cm의 안철민 대표는 이러한 요즘의 단절된 주거 공간에서 벗어나 조금 색다른 집을 만들었다. 창과 유리벽을 이용해 다 같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트리플 더블 하우스. 그에게 공간 곳곳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건축주는
집을 새로 짓지는 않지만,
아파트식 주거보다는
주택처럼 자연에서 뛰어노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트리플 더블 하우스는 판교의 월든 힐스 단지에 위치한 집이다. 이곳은 일본의 건축가 리켄 야마모토가 설계한 단지로, 주택 같은 공간을 원하는 건축주에게는 딱 맞는 건축물이었다.
근래 집합주거는 대다수가
개인화되어 있다.
이런 현상을 똑같이 겪은
일본에서는 카페, 취미실과 같이
작은 공유 공간인
‘시키(しきい)’를 두어
공동체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3층으로 이루어진 월든 힐스의 주거 유닛은 주 출입구와 연결된 1층을 시키처럼 이용해 아이들이 뛰어놀고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9cm의 안철민 대표는 원설계자가 의도한 공간의 콘셉트와 각 층에 주어진 환경을 건축주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1층은 손님을 맞는 전실이다. 사면이 유리로 되어 탁 트여 있지만, 신발장으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뒷면에 녹지가 있다는 점인데, 마당으로 사용하며 자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건축가는 창의 프레임을 얇은 제품으로 교체했다. TV를 따로 두지 않아 차를 마시고 명상하는 공간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지하층은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가 이루어지는 사적인 거실로 주방이 함께 있어 공간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졌다. 한편에 자리한 선큰 공간은 바비큐를 해 먹거나 파티를 하는 작은 마당으로 쓴다.
2층은 온전히 아이와 부모를 위한 공간이다. 건축주는 아이들이 갓 걸음을 떼고 걸음마를 배우는 등 자라나는 모습을 늘 지켜볼 수 있기를 원했다. 건축가는 층고가 5m가량 되는 공간을 복층으로 나누고 아이의 침실과 놀이방, 부부방을 유리로 구분해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을 조성했다.
사람은 예상외로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우리는 건축주가 가진 생각이나
잠재성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형태, 주거 방식을 만들고자
여러 방향으로 실험하고 시도한다.
안철민(안):
섬세하게 다룰 수 있다면 공간을 마음껏 개방하고 확장하는 것이 가능한 재료가 바로 유리다. 복합적인 공간 구조에서 유리를 이용하면 역동성을 더하고 빛을 깊은 곳까지 들여올 수 있다. 건축주는 층마다 다른 리조트를 방문한 듯 색다른 분위기를 가지면서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것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를 바랐다. 이에 집합주택이면서도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고민했고 자연스럽게 유리를 떠올리게 됐다. 유리는 시각적으로 개방돼 있어 소통하기에도 훨씬 편하다. 수성 마커를 이용하면 아이들이 벽에 그림을 그려도 쉽게 닦아낼 수 있으니 유지관리도 쉽다.
아이가 자라면서
입었던 옷이 작아지듯
공간도 평생의 행태를 감당하도록
계획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건축주가 살면서
필요한 부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안:
당시 건축주는 유년기의 자녀와 충분히 소통하기를 바라 유리벽을 이용해 계획했다. 대신 부모의 개인적인 공간을 지하층에 두고 시각적인 프라이버시는 루버와 블라인드로 가리도록 했다. 하지만 차단된 공간을 원한다면 불필요한 부분은 떼서 벽을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건축에서는 공간이 어떻게 연계되는지가 중요하다.
공간을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구획이 필요하다면 시각적으로라도 열려있는 것이 좋은데,
유리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재료다.
안:
유리를 사용할 때는 기능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안전성은 물론 외기와 면한다면 단열성도 갖춰야 한다. 어찌 보면 유리는 피임기구와 닮았다. 남녀가 관계를 맺을 때 밀착도를 위해 두께를 얇게 하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유리도 비슷하다. 얇고 투명하게 만들수록 파손되거나 외부 환경에 취약해질 수 있다.
창을 만드는 프레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전성이나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설계는 복잡해지고 프레임에 많은 요소가 더해져 두꺼워진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이 없다. 있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마음먹기도 쉽지 않다. 얇은 프레임에 대한 수요가 점점 더 커져야 생산 업체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가격이 낮아진다. 앞으로 단열 기준이 까다로워지겠지만 미관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사진 · 송유섭
안철민
(9cm 대표)
경희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더시스템랩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9cm의 대표로 건축과 인테리어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며, 새로운 주거 방식을 제안한다.
건국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팟캐스트 ‘예술 핥기’를 기획, 제작하며 문화와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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