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破果

by 건희



테이블 위 멍든 사과 하나

망치 들어 냅다 내리 친다

사과는 모래가 되어

심장속에 끝없이 가라앉는다


그냥 두면 안 되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날 좀 내버려 둬 도대체 왜 가만 두지 않는 거야

그냥 생긴 대로 그렇게 있고 싶어

그게 내 진심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건데

왜 자꾸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처음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을 뿐인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귀 막고 눈 가리고 혼자 있으면 될 것을

고독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거라

어차피 그것도 견디지 못할 걸 알아


가능성으로 들끓던 젊음

다시 끓이려 해도 도대체 불붙지 않는 젖은 장작

뭘 잘할 수 있을지 모르던 시절엔

뭐든 잘할 것 같았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잘 아는 지금은

뭐든지 자신이 없어

새로운 도전이 어떻게 끝맺을지 예상이 된다며

핑계 대는 시점에서 이미 글러 먹은 거야

사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일 뿐


주위를 돌아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던 시절은 끝나고

이젠 밖에 나서기가 두렵지만

또 밀려 나가야 해

잡아먹는 사람이 승리하는 세상에

너도 잡아 먹히던지

나보다 약한 누군가 잡아먹고 연명하던지

선택해 선택하라고

온 건물과 차와 가로등과 전봇대와

보도블록들이 일어나 소리치는데

귀를 막고 옷깃을 붙들고

휘어진 두 다리로 맞바람을 버티며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내딛는 것이

하루하루 더 버거워 가

폐를 찌르는 차고 뜨거운 공기에 기침은 늘고

얼굴에 생긴 버짐은 거울을 두렵게 하고

머리 하얀 건 괜찮아도

떨어지는 건 한 올 한 올 괴롭고


굽어가는 허리에 마스크 비딱하게 쓰고 탄 버스

어디 빈자리 없나 녹내장 백내장의 눈 부릅뜨고

책 하나라도 펼라 치면

이게 남은 생 뭔 도움이 되겠나 다시 접고

대화 좀 하자는 가족들 부름에는

그저 한숨만 나오니

어정쩡하게 살 바엔 차라리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냥 문을 나서서 공짜 지하철을 타고 나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모인 공간에

어느덧 나도 서 있다

바둑엔 세상이 들어 있다는데

그것 하나 가지고도 목숨 부지하는 친구들 보며

한심하다 생각하다

그런 취미 하나 없는 내가 더 초라한 걸 깨닫고


배는 이런데도 고프고 뭐 하루 더 살겠다

먹는 덴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가 좋지 않아 우물거리는 내 모습

다들 꼴 보기 싫다는 데

그렇게 꾸역꾸역 음식을 욱여넣고

오늘 또 하루 죽어간다


나를 파괴하지 못해

너를 파괴하는 본능

결국 모두 부술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내 가슴에

네 가슴에 기어코

돌을 던지고야 만다


들었던 망치

옆에 내려 두고

테이블 위 사과 멍든 부분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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