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고 굽은 길을
걷고 걸어
성에 다다랐다
성문을 지키던
콧수염이 긴 기사
단창과 방패를 들고
말을 달려와
큰 소리로 외쳤다
노래하라
노래가 없다고 주저하자
기사는 단창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노래하라 아니면 죽으라
아무 노래 하나 불렀더니
창날이 서서히 목을 찔러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피는
배꼽으로 스며들어
점점 끓어 올라
가슴을 지나
머리까지 차올랐고
이윽고 한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토악질처럼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내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던
최초의 노래이자
마지막 노래였다
노래가 끝나자
기사는 창을 거두고
방패를 내게 내밀었다
거기 내 노래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방패를 받아 들고
성을 돌아 굽은 길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에피타프 : 죽은 사람을 기리는 짧은 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