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빼빼로데이가 있었다. 올해는 아무도 줄 사람이 없었다. 줄 사람이 있단 건 행복한 거다. 평생 빼빼로데이와 밸런타인데이에 주기만 해봤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는데, 중3 때다. 그 이후로 없다.
그럼에도 계속 주는 게 좋았다. 선물을 주면 상대방이 좋아하고, 그럼 내 기분도 좋아지니까. 나도 줄 생각에 설레니까.
2023년 빼빼로데이 무렵엔 영국에 있었다. 한인 마트에 빼빼로가 팔았다. 내가 살던 지역엔 한인 마트가 없기에,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했다. 음악학부에 유일한 한국인 동기도 줬고, '이 사랑' 소설 속 두 명도 줬다. 한 명은 줄 기회가 없어서 못 주고 내가 먹었다. 영국에서 빼빼로 같은 걸 받을 거라고 그 사람들이 다 예상을 못했을 거 같아서, 더 기대되고 좋았다..
여자애와 남자애였는데 이번 글에선 특별히 빼빼로남과 빼빼로녀라 하겠다. (조금이라도 웃기 위해.)
빼빼로남이 날 손절하자, 이미 연락 끊어졌던 빼빼로녀를 찾았다. 그땐 진짜로 죽을 거 같았다. 흔히 죽을 거 같단 말을 힘들어서 하지 않나. 전혀 달랐다. 병원에서도 그땐 공황 왔던 거라고 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다.
작년 2월 나는 라디오 DJ를 시작했다. 한국인이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매주 케이팝쇼 진행을 한다는 건, 충분히 단톡방에 홍보해도 되는 사안이다. "이렇게 올리면 내가 잘 지낸다는 걸 알겠지."라고 빼빼로녀에게 말하면서 킥킥댔다. 그러자 빼빼로녀는, "걔 (또는 그 오빠. 뭐라고 지칭했는지까진 기억 안 난다) 그거까지도 다 알 걸."라고 했다. 알지만 어쩌겠나. 예나 지금이나 손바닥 안에 있던 것을...
10월 설리, 11월 구하라의 아픔과, 걔랑 기억이 짙게 묻어있는 10, 11월 중에 뭐가 더 아프냐 묻거늘, 나는 도저히 대답할 수가 없다. 언제까지 창원 안 가고 뻐팅기나 보자. 하하하하하. 요즘도 계속 기차표 봤다.
낙엽은 대체 언제 잡는 거야. 지난번에 낙엽 잡으려다 자빠져서 아직도 다리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다. 내가 추구하는 걸 계속 추구했다간 다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싶진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