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애들 만나러 왔어요

by 이가연

오늘은 아이들 놀아주는 봉사 활동을 갔다. 왜냐고? 어떤 대답이 가장 있어 보일까. 없어 보이는 대답은 알겠다. 도파민이 부족해서, 인생이 지루해서, 가족 빼고 봉사 빼면 실제로 누굴 대면해서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어른은 싫고 아이들만 좋아서. 이 중 '아이들을 좋아해서'라는 대답을 주로 사용한다.

봉사 시간 때문에 오셨냐는 말은 내가 특별히 동안이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듣게 될 거다. 보통 이렇게 1회성 봉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몇 명이 오는지도, 몇 살인지도 모르는 채, 아이들을 기다렸다. 처음 온 아이는 초등 저학년 남자아이였는데, 엄마를 붙잡고 안 떨어지려 해서 난감했다. (그랬던 애가 1시간 뒤에는 테이블 위에서 춤추고 놀았다.) 보아하니 엄마가 일본어를 하시기에, 나도 일본어 할 줄 안다고 했더니 선생님도 일본어 하신다며 들여보내는 데 성공하셨다. 일본어를 할 줄 앎에 감사해지는 순간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여자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도 일본어로 얘기하고 놀았다.
"넌 이름이 뭐야?"

나연이구나. 심장이 옆으로 쫙 스트레칭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나연짱~ 하면서 일본어를 지난 15년 동안 하고 싶었다. 이 아이도 엄마가 일본인이고, 이름도 나연인데, 한국에 살고 있구나. 종이접기도 하고 준비해 간 보드게임을 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계속 참았다.

눈물이 났던 이유 중 하나는, 내 사촌 나연이의 저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분명 저만할 때 헤어졌는데, 나중에 만날 수 있다한들 이제 곧 애들도 20대다. 애랑 일본어로 말해보는 것도 처음인데 이게 운명인가 싶었다. 나도 계속 일부러 "나연짱~"하고 부르게 되었다. "선생님 이름은 가연이야." 하니까 애가 환하게 웃었다.

일본어에도 한국어처럼 존댓말과 반말이 있다. 일본어 하면서 반말을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친한 일본인 언니도 40대라서 계속 존댓말을 썼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한테 반말로 일본어를 하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아이들이 일본어 했다가 한국어 했다가 번갈아 계속 쓰는 게 신기했다. 이것이 이중언어구나. 두 언어 능력이 똑같아 보였다.

사실 이렇게 여러 명 모집하는 1회성 봉사 활동은 할 일이 많지 않아서 뻘쭘한 경우가 있다. 그래도 애들이 일본어를 할 때는 나 혼자 알아들어서 맡아서 놀아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센터에 계신 선생님께 명함을 드렸더니, 애들 앞에서 노래도 한 곡 하시라 하셔서 불렀다. 애기 눈이 똥그래지는 게 귀여웠다.


이렇듯 뭔가 '나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오면 뿌듯하다. 과거에 종종 '이런 건 굳이 내가 안 와도 되지 않았을까'싶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들이 아이들 픽업하면서 나에게 "힘드셨죠?" 하시며 감사하다고 연신 이야기하시니 더 뿌듯했다.

봉사 활동은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의미가 있다. 당장 돈벌이는 없어도,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가 쓰임이 있다는 걸 항시 느껴야 산다. 브런치나 유튜브 활동으로 아무런 수입이 없어도,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고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올린다.


이렇게 1회성 봉사는 상당히 오랜만인데, 앞으로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 눈앞에 아른아른거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6 어쩌다 보니 알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