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정규 수업 시간이 되기 전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이 끝나면서 아이들이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책장을 정리하고 1교시를 분주히 준비하는 시간!
남학생 한 명이 울고 있었고 그 옆의 남자 짝꿍이 계속 이 친구를 째려보며(?) 투닥거리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문제의 두 친구를 불렀다.
"왜? 무슨 일이야? 무슨 일로 우는 거야?"
"제가 방구를 안꼈는데, 짝이 저보고 자꾸 방구 꼈다고 했어요."
우는 아이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깊은 숨을 뱉으며 한 박자 쉬는 타임을 가진 후 우는 아이 옆의 짝꿍에게 말을 하셨다.
"만약에~, 방구를 꼈다 치자. 그러면 그걸 꼭 이야기를 해야 되겠어? 하는 게 옳은 거야?
우기던 아이에게 생각하는 시간이 훅 들어왔다.
"아니요!"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있었고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그래~. 얘기하면 부끄럽잖아. 그럴 땐 얘기를 안 하는 게 좋겠지?"
간곡한 선생님의 말씀에는 호소력이 있었고 아이는 이 상황에 대해 억지나 강요 없이 이해한 후
아니오, 로 답한 것 같았다.
"그럼, 친구에게 사과해야지."
"미안해!"
"... ... ."
울던 아이는 억울함이 해소가 되어 다시 맑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이들 다툼에서는 자기들끼리의 입장이 있어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실타래처럼 얽혀 해결 기미가 안 보일 때, 담임 선생님의 공정한 중재가 있으면 대다수 아이들은 여기에 수긍한다. 아이들도 내심 다툼을 오래 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속상함과 자신의 정당함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때 담임 선생님의 적절한 중재는 평화로 가는 길을 당겨준다.
담임 선생님의, 만약을 가정한 역지사지의 논리가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서 광채를 뿜는 설득력을 발휘했다. 입장바꿔 생각하기라는 스마트한 해결 방법으로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해 버리셨다. 단호하고 상냥해야 할 때를 분명하게 가릴 줄 알고 훈계가 필요한 일에 사적인 신경질이나 짜증 대신 공적이고 공개적인 가르침으로 아이들을 일깨우며 날마다 이모 미소를 날리는 이 젊은 선생님을 나는 응원을 아니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