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따라 걷다 보면 계수나무 앞에 다다르게 됩니다.
계수나무는 옥토끼와 함께 달나라에 있다는 설화 속의 나무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비롭고 다정하고 친근한 나무로 느껴집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달 탐사를 통해 달나라에 옥토끼도 계수나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 신화 속을 걷는 듯한 아득한 기분이 듭니다.
계수나무가 달나라에 가게 된 연유는 중국의 한 설화에 나옵니다. 옛날, 중국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노시와 유탄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지주에 의해서 유탄은 죽음을 택하게 되고 노시는 유탄의 무덤가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흰 쥐 한 마리가 나타나 유탄의 무덤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려 하자 노시는 칼등으로 흰쥐를 내리칩니다. 잠시 후 회색 쥐가 나타나 죽은 흰 쥐 위에 나뭇잎을 덮자, 놀랍게도 쥐가 살아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노시는 이번엔 회색 쥐를 쳤고, 흰 쥐가 다시 나뭇잎을 물어다 덮자 회색 쥐도 살아났습니다. 노시는 그 나뭇잎으로 유탄의 시신을 덮었고, 기적처럼 유탄도 되살아나게 됩니다.
이 나뭇잎이 계수나무의 잎입니다. 소문이 퍼져 사람들은 계수나무의 나뭇잎으로 생명을 되살리려 했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옥황상제는 계수나무 때문에 하늘로 오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든 이유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계수나무는 인간 세상에서 하늘로, 그리고 달나라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아이와 어릴 적에 함께 읽었던 동화입니다.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고 신비롭던지,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합니다. 비록 설화 속의 계수나무는 실재하지 않지만, 현실 속에는 또 다른 계수나무가 우리들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실재하는 계수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계수나무는 잎이 무성한 계절, 맑고 바람 부는 날에는 설탕이 불에 노릇하게 탈 때 나는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옵니다. 계수나무에 대한 이러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향기를 따라가면서 바로 계수나무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그 향이 두드러집니다. 계수나무에서 나는 향의 근원은 꽃도 열매도 아닌, 바로 잎에 있습니다. 잎 조직 전체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가 휘발성 물질을 만들면서 우리에게는 설탕 캐러멜 향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계수나무의 잎 모양은 식물학적으로는 심장형이라 하고 쉽게 하트 모양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가장 풍성하게 잎을 달고 왕성한 광합성 활동을 하는 이 계절의 잎들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또 사랑해.
마치 하트 모양의 포스트잇이 사랑과 소망과 염원의 글귀를 담고 나뭇가지마다 포개어 붙어있는 모양을 한 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또 사랑해, 하며 속삭이는 듯합니다.
이 계수나무 잎사귀들은 가을이 되면서 발군의 사랑스러움을 더욱 휘황찬란하게 드러냅니다.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스러움은 또 다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면서 계수나무 향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후각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면 계수나무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확신하게 됩니다.
어느 날,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를 들어서는데 달콤한 향을 맡았습니다. 가을이 되어야 나겠거니 했던 향기가, 찌는 듯한 여름의 바람결에 실려 코끝을 간질였습니다. 며칠을 두고 검증해 보지만 햇볕 좋고 바람 좋은 맑은 날은 어김없이 달고 고운 향이 실려옵니다. 저는 한자리에 오래 서서 향기를 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계수나무는 공원에서도, 아파트 단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지만, 그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중생대 후기인 백악기부터 신생대 초기에 걸쳐 화석으로도 존재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북반구 전역에 분포했지만, 지금은 대륙 이동과 기후 변화, 환경에 대한 적응력 등 지질학적 변화와 기후 변동에 적응한 일부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만 자생하고 있는 귀한 나무입니다.
은행나무나 메타세쿼이아처럼 고대의 화석과 거의 변함없는 형태로 오늘날까지 생존한 나무들을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르는 데 비해 계수나무는 '고생 잔존 식물'로 부릅니다. 고생 잔존 식물은 과거 화석 속 계수나무와 형태 면에서 유사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고, 과거에 넓게 분포했지만 기후 변화 등으로 특정 지역에만 남은 고대 식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작년 가을, 문경새재 제1관문을 들어서면서 향기로 고색창연하게 가을을 물들이는 계수나무를 만났습니다. 춘천시 중앙로 가로수 길에는 약 100여 그루의 계수나무가 도시의 낭만을 책임지고 있고 대구수목원 안쪽에는 계수나무로 조성된 조용한 쉼터가 있습니다. 사람 없는 고요한 시간을 택해 그곳을 찾아가면, 마치 계수나무의 줄기를 타고 천상을 다녀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계수나무가 실제로 달나라에 있지 않다고 해도, 우리 곁에 실재하는 계수나무는 충분히 현실 속의 신비가 되어 줄 것만 같습니다. 오는 가을에는 눈을 가만히 감고 향기만 좇아 계수나무 가까이에 머무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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