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는 제게 참 낯설고 생소한 나무였습니다. 명성과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가 없는 나무였습니다. 소나무나 은행나무 혹은 벚나무라고 하면, 이름에 맞는 나무들의 이미지와 함께 나무들만의 정체성이 오롯이 머리에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회화나무는 회화나무를 만나 줄기와 잎과 수형을 주의 깊게 살핀다 해도 시간과 때를 달리해서는 도무지 분간해 낼 것 같지 않았습니다.
처음 회화나무를 찾아 나선 것은 4년 전쯤 올림픽 공원에서였습니다.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세 사람이 만나 연신 만나는 나무들마다 이름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나무 하나라도 뾰족하게 정확히 알아낸 것이 없었습니다. 이때 한 선생님이 얼마 전에 이곳 올림픽 공원의 숲해설가로부터 들어 알게 된, 정확한 나무 하나를 알려주겠노라며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회화나무라고 하시며 선생님은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세밀히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 알고 있었던 정보 한 가지는, 회화나무의 열매가 염주알을 엮은 것 같은 콩꼬투리 모양이라는 것인데, 아무리 살펴도 이 나무의 열매는 콩꼬투리도 염주를 엮은 모양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회화나무가 아닌 것 같다고 까닭과 함께 조심스레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곳 숲해설가 님이나 동행한 선생님에게 필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훗날 그 나무는 '가죽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회화나무를 2년 전쯤 근무하는 학교에서 시시때때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령이 80년 정도 되는 회화나무는 학교의 상징처럼 교문을 들어서면서 우뚝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화나무는 운동장 가쪽으로 늘어서 있는 느티나무와 그 앞의 중국단풍이 잎을 무성하게 키우고 있을 때도 끄떡하지 않고 지난겨울의 모습대로 나목의 형상으로 서 있었습니다. 나무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제대로 살아가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몹시도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회화나무가 조금씩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5월 초에도 겨우 간지럼 태우듯 장난치듯 가녀린 잎을 한두 장 내미는데 그치더니 5월 말이 되자 회화나무는 느티나무와 중국단풍과 진배없는 모습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꿈꾸는 나뭇잎을 푸른 물결처럼 흔들고 있었습니다.
"늦어도 괜찮아. 나를 보렴. 가장 늦었지만 지금은 같은 위치에서 함께 걷고 있잖니? 나는 앞으로 더 쭉쭉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단다. 나, 회화나무를 보고 용기를 얻기를 바라!"
이렇게 회화나무가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더디고 느린 아이들에게 용기와 응원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학자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회화나무가 큰 벼슬을 하라는 말 대신, 늦어도 괜찮다, 고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때에 맞춰 시간을 기다리며 잎을 내는 모습에서 주위의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회화나무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되었고, 때를 놓쳐 회화나무가 꽃피우는 모습을 그해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꽃이 폈는지 졌는지도 모르는 사이 조그만 콩꼬투리열매가 앙증맞게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회화나무의 꽃 피는 시절을 보지 못한 저는 나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언제였던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게는 화려하게 꽃 피거나 총명했던 시절이 한 번도 없었던 것만 같았습니다.
또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언제가 가장 화려하게 꽃 피던 시절이었을까? 꽃 피는지도 모르고 자식들 키우느라 바쁘게 살면서 인생의 화양연화를 보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그러면서 꽃이 뭐 대수라고, 자식들 잘 크고 잘 살면 그만이지, 하는 속 깊은 마음속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오늘 대구수목원을 산책하면서 드디어 회화나무가 꽃피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더불어 회화나무를 보고 왜 예로부터 호방하고 호탕한 자유로운 기상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지 그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무의 모양이 여실히 드러나는 겨울 나목의 모습을 보면 회화나무의 자유로운 기상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화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삼국지나 장자의 소요 편을 읽는 것이 격에 어울린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회화나무의 나뭇잎이야말로 이 여름의 더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수깃꼴겹잎, 즉 깃털처럼 잎줄기의 좌우에 작은 잎을 달고 있는 회화나무의 잎모양이 창공의 바람에 자유롭게 흔들리면서 바람과 가장 잘 노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주점에 가니,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추위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겠나, 술 사 먹지!"
회화나무 잎사귀는 이렇게 말할 것만 같습니다.
"더위야, 네가 아무리 더워봐라. 내가 부채 부치겠나, 바람과 놀지~"
회화나무 잎이 그렇게 말하며, 한껏 흔들리는 듯 했습니다. 바람 속에서 여름을 가장 멋지게 노는 잎. 그 잎처럼 나도 나답게, 내 계절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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