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까이에서 가볍게 나서서 제법 산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집에서 20분 거리를 걸어 나와 대진초등학교 건너편에서 시작하는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처음에는 완만하다가 조금 걷기 시작하면 줄곧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평소 운동이 부족하거나 무더운 날에 이 오르막을 처음 오른 사람에게는 한동안 가보고 싶지 않은, 첫인상이 매운 곳이기도 합니다.
이 가파른 산길은 대구수목원으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입구 중의 하나와 통합니다. 오르는 길에는 주로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등 참나무 종류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씨앗에서 발아한 자그마한 나무들이 여러 줄기를 뻗어 자라는 관목류와 풀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발치에는 손톱만큼 작은 나방 떼들이 얼마나 분주하게 날아다니던지. 아마 그때는 봄빛이 숲을 물들이기 전인 2월 말이나 3월 초순인 걸로 기억이 됩니다.
산을 오를 때는 두 가지 힘이 제 몸에서 작동하며 서로 조율을 합니다. 하나는 거침없이 씩씩한 걸음으로 내닫는 일. 이 경우는 잡념이 사라지고 맑고 깨끗한 기운으로 몸이 차오를 때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많은 자연물에 시선을 두고 살피느라 걸음이 한없이 느려지고 꾸물거리는 경우입니다. 평소에는 무념무상으로 이어지는 씩씩한 걸음이 우세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날은 느리고 꾸물하는 걸음이 씩씩한 걸음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불과 10분 정도의 집중에 불과하다 해도, 공부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몰입의 경지를 경험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그날은 빛과 빛 사이, 공기와 공기 사이에 사선으로 비낀 어떤 틈을 통과해 다른 세상에 닿은 것처럼 숲에 흠뻑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빛의 막을 뚜벅 걸어 나오자 부스럭거리는 낙엽들이 현실 감각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리고 멀리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단지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문득 뒤를 돌아보았지요.
심장이 쿵쾅 내려앉을 듯이 놀랐습니다. 스무 걸음 뒤에 어떤 남자 한 분이 서성이고 있었고 저는 몹시 당황하였습니다. 나는 무섭지 않아요, 하는 심정으로 2/3 지점까지 올라온 산을 그를 거쳐 다시 되돌아내려 갈까 하는 생각도 퍼뜩 스쳤습니다. 경보를 하듯 빠른 걸음으로, 조깅을 가장하여 달리고 걷기를 반복하면서 놀란 고라니 한 마리가 되어 '생쇼'를 하며 남은 1/3의 길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뒤를 돌아보았지요.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숲의 적막 속에서 걸음은 다시 고요하고 느려졌습니다.
아마도 뒤에 오는 발소리도 못 들을 만큼 숲에 흠뻑 빠져 있는 저를 앞서 가기도, 뒤에서 느리게 속도를 계속 맞추어 걷기도 곤란한 지경에서 제가 고개를 돌려 그와 마주하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황한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놀란 고라니 한 마리가 뛰다가 걷다가 달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꼴에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숲 어딘가에 머무르기로 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왠지 저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숲길을 다 내려와 대구수목원 입구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서 그때 처음 주엽나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팽팽하게 긴장한 채 무시무시한 창살 같은 굵고 긴 가시를 겨누고 서 있는 주엽나무는 최근에 심어진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산길을 통한 이쪽 관문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음에도 그날 처음으로 만나게 된 주엽나무였습니다.
주엽나무는 줄기에서 비롯된 굵은 가시가 20~30센티미터 길이로 자라며, 가시에서 또 가시가 두세 번씩 가지치기를 하여 더 위협적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잎은, 큰 잎자루에 작은 잎이 새 깃털 모양을 만들며 양옆으로 나란히 달려있는데 그 모양이 차라리 귀엽고 앙증맞기까지 합니다.
주엽나무처럼 가시를 가진 식물들은 많이 있습니다. 장미도 있고 선인장과 탱자나무의 가시도 위협적입니다. '아름다운 것에는 가시가 있다'는 통속적인 말에서 장미 가시에 대한 의구심을 내려놓은 지는 오래되었고, 선인장과 탱자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 또한 사는 동안 무뎌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줄기 속에서부터 굵고 날카로운 가시를 뽑아낸 주엽나무는 새로운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엽나무는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험한 가시를 만들었던 걸까요? 왠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주엽나무를 보며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입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가 연기한 이지안은 웃는 일이 거의 없고, 날이 서 있는 눈빛과 표정 없는 얼굴로 사람들과 거리를 둡니다. 애당초 사람에 대한 '신뢰' 따위는 없다는 듯 건조하고 무뚝뚝하고 비꼬는 말투로 일관합니다.
이지안에게 세상은 한 번도 보호막이 되어준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과 세상의 무관심 속에 자랐고 지금은 청각장애인인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생계와 간병과 채무를 오로지 혼자서 감당하면서 삶의 무게를 버티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의를 베푼 적 없는 세상은 '적'에 가까왔습니다. 세상에 대한 이지안의 태도는, 적에게 겨누는 창이며 최소한의 방어수단이자 세상에서 배운 삶의 방식입니다.
회사 상사인 박동훈은 가시 돋친 울타리 밖에 서 있는 이지안을 발견합니다. 박동훈은 회사에서는 무력하고 아내의 외도로 괴로운 삶을 침묵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가족의 버팀목으로서, 오로지 견디는 것으로 삶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지안의 상처와 침묵은 박동훈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몰래 박동훈을 엿듣는 이지안은,
"가족을 건드리면 나도 그래. 나도 죽여."
라고 말하는 박동훈의 말에 복받쳐 웁니다. 거짓 없는 박동훈의 말이 지안의 상처를
보듬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주엽나무에게도 이지안과 같은 상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무지막지한 가시를 달고 있을까요? 주엽나무는 자신의 선조에게 있었던 위협과 큰 상처가 지금도 유전 형질로 남아 해마다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지안이 박동훈과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 것처럼 무수한 시간이 지나 주엽나무를 향한 위협이 사라지면 가시라는 유전적 형질에도 변화가 찾아올까요?
나무에게 가시는 방어 수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른 봄에 새순들은 굶주린 초식 동물들에게 좋은 먹이가 됩니다. 사슴이나 소 가 잎을 먹지 못하게 혹은 곤충들이 잎과 줄기와 꽃을 먹지 못하게 하는 방패 역할을 합니다. 가시 외에 주엽나무의 두드러진 특징은 열매에 있습니다. 콩과인 주엽나무 열매는 바나나 껍질이 바싹 메말라 뒤틀린 모양으로 연두색에서 누런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주엽은 익은 열매의 내피 속에 끈적끈적한 잼 같은 달콤한 물질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주엽나무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없는 적을 향해 창을 겨눈다, 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적대적인 세상과 마주한 이지안과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세상은 녹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박동훈과 이지안처럼 따뜻한 마음을 통해 상처를 말하고, 감정을 회복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단하고 조용하게 마음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나무의 삶은 사람의 그것과는 다르다 해도 주엽나무에게도 세상의 다정함이 온전히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주엽나무 이야기>
숲길을 걸었네
조그맣게 날개짓하는
풀숲의 어린 나방
새벽의 이슬같이
남몰래 머무르고 싶어서
큰 구름 하나
하늘 위로 흐르고
그늘이 잠시 몸을 덮는 사이
몸에는 가시가 돋았네
뿌리 근처에
줄기의 사방에
창살같은 가시가 돋았네
주엽나무 가시에
서려 있는 이야기.
봄과 여름과
겨울까지 이어지는
주엽나무 가시
주엽나무 가시에게 물었네
너 무슨 사연으로
아직까지
창을
들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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