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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때로는 헤어짐이 최선일 때도 있다.

by 오경희

2013년 대한항공 A380기에서 발생한 사건도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비즈니스석 승객이던 P사 왕 상무는 기내 주방 갤리에 난입해 들고 있던 책 모서리로 승무원의 눈두덩이를 내리찍었다. '라면이 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갖가지 트집을 잡으며 그가 받아낸 세 번째 라멘에는 수프가 고작 반만 들어가 있었다. 미국 땅에서 그를 맞이한 건 FBI, "기내 승무원 폭행은 테러행위다. 입국 수속 후 구속 수사를 받아라, 아니면 입국을 포기하고 그냥 귀국하라." 이에 울며 겨자 먹기로 되돌아온 그는 보직해임을 당했다. 그리고 라면 봉지에 "매운 싸다구 맛과 개념 無첨가"등 문구가 추가된 조롱 섞인 패러디 물이 등장하며 널리 회자된다. 이 사건은 그동안 쉬쉬하던 불량고객 문제를 사회적으로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량고객은 직원, 고객, 기업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 직원에게 정신적, 물리적, 정서적 피해를 줄 수 있다. 고객의 위협적인 욕설이나 행동을 경험한 직원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사기가 급격히 저하된다. 불량고객에게 반복적으로 휘둘리게 되면 직원은 인격적인 모멸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한 고객센터 관리자에 의하면 불량고객들이 숫자로는 적지만 정성적으로는 전체 업무 부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B2B기업에서도 불량고객은 발생한다. 상생하는 파트너 관계가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로 보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이 종종 발생한다. 예컨대 공개할 수 없는 기술 관련 자료를 요구하거나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제품 불량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심지어 리베이트, 향응 접대 등 불법적인 요구도 있다.


불량고객은 다른 고객들을 불편하게 하며 그들의 경험을 망칠 수 있다. 결국은 대다수의 선량한 고객에게 피해가 간다. 게다가 그런 행동을 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잘못된 학습을 통해 다른 고객이 모방할 수 있다. 불량 감자 하나가 다른 감자도 상하게 만드는 셈이다. 불량고객은 또한 기업에게 여러 가지 비용을 유발한다. 실질적인 피해를 복구하는 비용에서부터 스트레스받은 직원들이 이직해 신규 채용해야 하는 비용 등이다. 최근에는 리뷰를 명목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며 협박을 하는 소위 리뷰 거지도 문제다. 고객입장에서 주면 좋고 안 주면 말고 가 아니다. 요구를 안 들어주면 별점을 낮게 주고 악평을 남기는 것이다. 업주 입장에서는 별점 리뷰가 매출과 연관이 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특히 코로나 이후 배달 등 비대면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이런 별점 테러가 증가하고 있다.(고객의 탄생, 이유재)


호박이 나타났다!!!


모 텔레콤 고객센터에서는 가끔 진상 고객으로 분류된 콜이 인입되면 '호박이 떴다!'라고 외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회사가 불량고객에 대한 관리를 한다.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에서는 색깔로 구분했었고, 흔히 얘기하는 불량고객을 관심고객이라고 불렀었다. 군에서는 '관심 사병'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보니, 아마도 당시 관심고객이라는 용어를 선택할 때 우리에게 비슷한 뉘앙스를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위에서 얘기한 텔레콤 회사에서는 고객상담 프로그램에 심하게 민원을 거는 고객은 호박 표시를 달아주었었고, 콜이 인입되면 해당 고객을 인지하고 긴장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호박표시가 떴는데, 총 5개의 호박이 달린 고객이 뜰 경우에 센터에서 저렇게 직원들이 호들갑을 떨곤 했었던 같다.


어느 회사에서든지 불량 고객은 있다. 한때 식품회사에서는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공유한 적이 있었다. 모든 식품회사에 돌아가면서 강성 민원을 제기하는데, 실제 확인 불가능한 내용도 존재했었고 악의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위와 같이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데 이유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의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 및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기업들이 불량 고객을 서로 공유하고 저지하기가 쉽지는 않다.


내가 근무하던 회사도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회사의 잘못된 규정이나 정책으로 인해 고객에게 불편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과 별개로 개인의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악의적인 케이스 또는 사소한 실수를 빌미로 한몫 잡아보려는 심리로 인한 불량 고객의 발생이 존재한다.


2020년 티 모바일로 통합해서 그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 미국의 통신사 스프린트가 2007년 내렸던 고객해지 결정은 당시에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었고 지금 봐도 파격적이었다. 원인은 고객이 한 달에 40회 이상을 회사에 전화를 걸고, 지속적으로 서비스 크레딧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스프린트는 5300만 명의 고객을 보유했었는데 1,000명의 고객을 단계적으로 해지하도록 유도하고 번호이동을 시키는 작업을 했다. 나도 관련해서 현업에 있을 때 계산해 보았는데, 한 달에 고객이 20회 이상 회사에 전화할 경우 회사는 손해를 보는 구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스프린트의 결정은 한편으로 참으로 무모해 보인다. 13년 뒤에 티모바일로의 합병은 고객을 바라보는 스프린트의 이와 같은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일상적으로는 한 달에 한번 또는 사용기간 내에 한 번도 콜센터에 전화를 거는 일이 없는 경우가 사실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40회 이상을 전화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대량 해지를 하고 사회적으로 이슈를 남겨야 했는지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의문이 든다.


어느 회사든 모든 서비스가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CS부서를 전면에 배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빈틈을 파고드는 불량 고객은 잘 관리해야 한다. 스프린트처럼 이슈를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정책을 가지고 조용히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의사 결정을 하기 이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불량 고객으로 선정하는 데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간혹은 단순한 클레임이 불량고객으로 낙인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날 상담한 직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래서 불량 고객으로의 선정은 정확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검증 작업을 통해서 확정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혹시 회사 내부에 불량에 대한 규정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혹자는 '불량인 것은 고객이 아니라 회사의 규정이나 정책이다'라고 말한다. 회사의 잘못 수립된 규정이나 정책이 고객을 불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앵무새 같은 반복된 응답을 통해서 고객을 답답하게 하지는 않는지, 클레임의 유형을 잘 살피고 대응해야 한다.

셋째, 투명한 처리절차를 확립하고 직원들에게 대응 매뉴얼을 제공하고 주기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사실 고객이 불법을 행하더라도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기업이 고객과 싸워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보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방송통신사의 경우는 서비스 크레딧, 즉 요금을 감면해 주거나 VOD쿠폰 등을 제공하곤 하는데, 이를 알고 주기적으로 민원을 걸고 서비스 크레딧을 제공받는 고객들이 있다. 불량 고객에 대한 입막음 방식이 암암리에 퍼지면 정상적으로 고객을 대하는 직원들도 힘들지만, 입소문으로 퍼져서 점점 더 불량 고객의 비율이 늘어날 수 있다. 한동안 해지 관련 팁들이 인터넷에 한창 공유되면서 통신업계에서는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넷째, 불량고객에게 적절하고 공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기업은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불량고객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고객의 말에 공감을 하더라도 동의는 하지 말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대부분 통신사들은 대기업이고 연매출이 크다 보니 고객들이 작은 민원에도 큰 보상을 원하는 경우들이 있다. 대기업에서 그 정도 금액은 껌값이니 지불해라. SNS에 올리겠다 등등의 많은 협박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직원들은 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법을 가지고 고객과 다투라는 얘기가 아니라 약관과 관련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말도 안 되는 협박 앞에서 벌벌 떠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고객에게도 고객으로서의 최소한 의무와 행동 지침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ARS 전화연결을 시도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고객응대근로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사오니 상담사에게 욕설, 폭언, 성희롱을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멘트다. 그 뒤에 "상담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등의 멘트가 덧붙여지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 인터넷의 악플만큼이나 비대면에 숨어서 상담사에게 심한 폭언 및 성희롱을 하는 고객들이 있었다. 결국은 법으로 제정하고 있지만, 고객들에게도 끊임없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예가 한동안 진행되었던 자동차 보험 부도덕한 청구로 인한 과잉 지급이었다. 한동안 캠페인을 하더니 지금은 경상에 대해서는 한도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한편에서는 선량한 피해 고객을 발생하게 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고객 교육이 필요한 영역이다.

여섯째, 선한 의도의 고객을 불량고객으로 오인해서는 안된다.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고객치고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고객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 클레임 전담 부서에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가진 선한 의도의 고객을 오인해서는 안된다. 99명이 불량해도 그중에 선한 사람 한 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때로는 헤어짐이 최선일 때도 있다. 필자가 현업에 있을 때 스프린트가 했던 고민을 역시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대응을 했었는데, 지속적으로 서비스 크레딧을 요구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상담사를 괴롭히는 고객의 경우에는 이별로 대응했다. 이 경우는 센터에 권한을 주지는 않았는데, 남용될 수 있어서 철저하게 본사에서 관리를 했었다. 고객과 비록 헤어질 결심을 했더라도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한다. 고객의 수준에 맞춰줄 수 없음에 얼마나 안타까운지를 설명하고 그에 따라 고객이 스스로 떠나는 선택을 하도록 시나리오를 잘 짜서 대응해야 한다.


아름다운 이별은 모든 관계에서 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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