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모임을 통해 친해진 A가 있다. A는 오랫동안 호텔에서 요리를 하며 일을 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퇴사 후 샤퀴테리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샤퀴테리란 돼지, 가금류, 수렵육, 양, 소의 고기와 부속 및 내장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가공식품을 통칭한다.(출처 : 그랑 라루스 요리 백과)
사실 A를 알기 전에는 샤퀴테리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듣고도 많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근데 하몽, 살라미, 잠봉같은 육가공품들이 샤퀴테리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고 내가 먹었던 것들이 샤퀴테리였구나 생각하게 됐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공방에서 A의 샤퀴테리점은 가까웠기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들렀다. 나는 보통 잠봉뵈르샌드위치를 사 먹었는데 잡내도 없고 담백한 맛과 함께 버터의 풍미와 신선한 채소를 즐길 수 있어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메리카노와 함께 점심으로 먹으면 물리지 않고 맛있게 끝까지 먹을 수 있는 꿀조합이었다.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할라피뇨잼에 대해 듣게 되었다. 할라피뇨로 만든 잼이 있다고? A는 본인이 직접 만드는 데 고충이 많다고 잼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나에게 할라피뇨잼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A가 말하는 잼은 몇 해 전 티브이프로그램에도 나온 적 있는 잼으로 방송에 출연한 출연자분들이 먹어보고 맛있다고 극찬한 잼이었다.
A는 할라피뇨잼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할라피뇨자체로 잼을 만들면 맛이 없고 할리피뇨 피클로 만들어야 맛이 난다고 했다.
피클로 잼을 만든다고?! 참 듣고보고못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창의적인 잼들을 개발하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과일이나 채소, 초콜릿도 아니고 피클로 잼을 만든다니 너무 특이했다. 나는 바로 공방으로 돌아가 금방 마트에서 산 할라피뇨피클로 잼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할라피뇨 피클의 시큼 매콤한 향이 코를 찌르긴 했지만 적당한 양의 설탕과 레몬즙을 넣고 서서히 끓여 완성했다.
처음 완성한 결과는 실망이었다. 펙틴을 따로 안 넣으니 잼이 주르륵 흐르는 질감이었고 그렇다고 더 끓이자니 매콤함은 없어지고 너무 달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빵에 발라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질감과 당도를 조절하기 위해 천연 펙틴을 첨가했고 최대한 즙을 체에 걸러 제거하고 할라피뇨만 써서 식감을 더욱 살렸다.
이렇게 시큼하고 매콤한 피클로 잼을 만들면 맛있을까 의문도 많이 가졌는데 여러 실패 끝에 완성된 할라피뇨잼은 놀라웠다. 매콤함과 달콤함이 의외로 조화로웠고 감칠맛이 있어 중독성까지 있었다. 보통 잼이라면 빵이 생각났지만 이 할라피뇨잼은 고기가 먼저 생각났고 실제로 삼겹살, 목살과 함께 먹어도 맛있었다. 또 샌드위치나 샤퀴테리와도 잘 어울렸다.
할라피뇨잼은 민트초코잼보다 더 매니악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먹어본 분들중 다시 찾아주는 분들이 많을 정도로 빠져드는 맛이 있는 잼이다. 피클로 만드는 잼은 나를 더욱 편견 없이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잼을 만들어 볼 수 있게 만들었고 요새도 프랑스 전통 스타일부터 대체당으로 만드는 잼까지 고집 없이 시도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