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썼다. 누군가가 내게 묻는 듯한 이야기 말투의 일기. 화랑이가 화랑이에게 말을 건네는 일기.
어떻게 힘든 걸 이겨냈어요?
이겨낸 적 없어요. 도망갔어요. 책방으로.
책들은 저랑 같이 슬퍼해줬어요.
이야기 속의 작가들은 언젠가 저만큼 슬픈 적이 있었던 사람들처럼, 제가 묻지도 않았지만 대답이 필요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줬어요.
책방 사장님들이 희망을 줬어요.
습관적인 친절로요.
사무치게 외로운데 아무도 날 모를거라 생각했던 날에는
"엇, 혹시 그 때 그 분?"하며 딱 한번 본 불량 책방 이용자를 기억해주었어요.
먹기 싫은데
약 때문에 억지로 혼자 밥을 먹고 돌아온 날 밤에는
디저트도 먹으라며
책상 위에 곱게 배를 깎아 올려놓아준
공유서재 대표님도 있었고요.
직장에서는 다들 걱정해줬어요.
연락을 해도 될까, 내 마음을 가장 눈여겨보면서
지금까지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자신들이 더 아파해줬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내가 필요한 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따뜻하고 친절하게 살아가는 거라는 걸 말예요.
그래서 이겨내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아픈 채로 기대어 살아보려고요.
다음날 아침, 역시나 일찍 눈이 떠졌다. 11시 전까지 짐을 비워달라는 말을 충실히 이행하려 부지런을 떨었다. 준 과일에 뭐라도 드리고 싶어 가방을 뒤졌으나 달리 나온 것이 없어 포스트잇에 편지를 적었다.
[대표님께
착하고 바르게 살다보면 사람은 이렇게 행복해질 수도 있고 사랑받을 수도 있다는 증명 같았다 - 오후도 서점 꿈 이야기 놓습니다.
제게는 호모북커스와의 3일이 그랬어요. 숨은 곳이 도피처인줄 알았는데, 사랑의 장소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이 무섭다며 숨었지만, 사실은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 속에서 누구보다 함께이고 싶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바랐던 착한 사람들이 없는 줄 알고 실망했을 무렵, 호모북커스와 함께하며 무수히 제게 함께하자 손 내미는 사람들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살게요. 화랑 드림.]
…이렇게 아름답게 화랑이는 잘 성장하고 극복하여 웃는 얼굴로 집에 들어갔습니다- 하면 참 좋으련만, 인생은 제 맘대로 아름답게 마무리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는 내일이 있고, 당장 오후에 누군가를 만나야 할 약속이 있다. 나의 직업과 나이, 상황을 모르는 느슨한 연대의 성인들에게 우울증을 어떻게 터놓을지- 말지- 사실은 그것보다 내 심장 두근거림이 멀쩡할런지부터 불가사의하다.
하지만 글씨로 쓰는 일기는 여기서 마친다.
그건 내가 유일하다시피 스스로 끝맺을 수 있으니까.
-5월 30일에서부터 6월 2일 오전까지의 기록. 수기. 끝.
안녕하세요, 어느덧 몰래 다가와
슬쩍 코를 때리고 사라지려고 하는 가을을 붙잡고만 싶은
10월 첫 주의 화랑입니다.
다음 행선지는 - 6월 중순의 안동입니다.
제가 북스테이 이야기를 글로 쓴 것 중, 가장 애정하는 마음의 조각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혹은 바쁘시겠지만 괜찮으시다면
6월 초/중순의,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희망의 씨앗을 스스로 심고 뿌듯해하는
6월 중순의 여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허전하면 허전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온 몸으로 맞이하는
감정에 충실한 나날들 되시기를
저 멀리서 사라져가는 가을 공기에 띄워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0월 6일, 쌀쌀한 온도차에 훌찌럭거리는 화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