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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Sep 22. 2021

우울의 늪을 지나

눈물이 만들어 낸 바다

길을 걷다 지쳐 헛디딤과 동시에 풍덩 나의 몸을 던져버린다. 내가 그곳에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인지, 잘못 디뎌 빠지게 된 건지 나도 모른다.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무 힘이 없는 채로 그곳에 빠져버린 사실이 더 중요하다.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 그것 하나만 알 뿐이다. 나오려 할수록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 나를 끌어내리는 것만 같다. 



이 늪은 진흙탕과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점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면 못 나가게 막는다. 겨우겨우 빠져나오는 듯하면 나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잔여물들이 나의 몸을 떨군다. 일으켜 세워 걸어 나가다가도 힘이 없어 멍하니 서있고, 다시 또 걸어가다가도 그냥 이대로 주저앉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이 안에 있고 싶은 걸까.



멈추는 횟수가 많아지고 나오려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나의 몸은 점점 진흙과 한 몸이 된다. 코 앞에 있는 맑고 깨끗한 정원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늪으로 빠진다. 치열하던 진흙과의 싸움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늪은 조용해지고 늪의 세계는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숨을 쉬고 싶다. 목이 막혀온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 투성이다. 나의 앞날은 어떻게 흘러갈까. 나는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걸까.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늪 안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똑같은 자리에서 다리만 왔다 갔다 하고, 진흙만 조금 옮겨지는 제자리걸음이다. 누군가가 나를 지그시 누르는 느낌이 든다. 그래 봤자 진흙인데, 뭐가 이리도 무거운 걸까. 영원히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공포와 불안이 생긴다. 나는 이대로 죽는 걸까. 나는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나의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세상은 알기는 할까.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라면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살짝 억울하다. 이러려고 태어난 인생이 아닌데.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인생인데. 아직 하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이대로 내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데. 좀 많이 억울하다.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미친 듯이, 온갖 상처 다 받으며, 여기까지 기어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풍덩 빠져 이대로 삶을 마감해야 한다니. 이대로 내 존재가 사라진다니. 많이 억울하다. 화나고, 슬프고, 비참하고, 아프다. 그래서 마냥 운다.



어차피 아무도 듣지 못할 나의 목소리, 마음껏 소리 내어 운다. 기댈 곳 하나 없었던 인생, 진흙에 기대어 운다. 그동안 울지 못했던 일들을 모조리 꺼내어 운다. 아팠던 일들, 서러웠던 일들, 화났던 일들, 억울했던 일들, 외로웠던 일들, 답답했던 일들, 그게 무엇이든 다 꺼내어본다. 내가 이렇게 아프게 살아왔구나,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구나, 내가 이렇게 외롭게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더 서러워진다.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꺼내어 운다. 세상이 떠나가라 운다. 늪이 사라져라 운다. 내 안의 눈물이 바닥날 때까지 운다. 내 목소리 좀 들어달라 운다. 울다 지쳤다. 나를 안아주고 싶다. 눈물 때문인지 몸에서 진흙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나를 안아준다. 마음껏, 힘껏, 최선을 다해, 꽉 안아준다. 갑자기 또 서러워진다. 다시 또 아픔들이 떠오른다. 나를 부둥켜안고 운다. 아까보다 눈물이 더 많이 나온다. 온몸을 껴안고 운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건 최선을 다해 운다.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운다.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운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운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진흙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녹아져 내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로 운다. 주변 환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나의 슬픈 나날들만 떠오를 뿐이다. 울다 지쳐 잠이 든다. 잠이 든 것인지 기절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반쯤 기절한 것으로 해두자. 



눈을 떴다. 이상하다. 세상이 밝다. 주변을 둘러본다. 정원이다. 

뒤를 돌아보니 늪은 사라지고 바다가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n6RXaS8K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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