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이 풍부했던 그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들의 목소리를 참 좋아했었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라디오를 즐겨 들었었다. 그 시절 인기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꽤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점차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라디오는 금방이라도 자취를 감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하지만 돌고 돌아 요즘 나는 다시 라디오를 즐겨 듣고 있다. 유행이 돌고 돌듯이 모든 만물은 그렇게 돌아가나 싶기도 하다.
라디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참 좋다. 소개되는 사연들을 듣고 있으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 오히려 영상을 보는 것보다 더 역동적일 때도 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들, 미지의 영역들까지도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라디오는 세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중요한 매체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라디오를 듣다 보면 문득 나는 굴곡 없는 무난한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 나도 나름 험난한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나의 힘듦은 그들의 사연에 빗대어 보면 아주 작은 해프닝에 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때 당시에는 나의 아픔이나 좌절감은 엄청난 것이라고 느껴졌을 텐데 그 풍파를 지나온 지금의 시점에 보니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일상에서 일어나는 재밌는 사연들을 들을 때면 나의 삶은 참 재미없고 지루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매번 같은 일상을 살고 그렇게 살아지는 큰 물줄기에서 모난 부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모난 부분이 생기기 전에 미리 그 싹을 쳐내는데 능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물결이 생기는 것을 꺼리는, 아니 그런 물결을 받아줄 체력이 이제는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매일 굴곡진 언덕을 올랐다 내려왔다, 호수에는 언제나 물결이 강렬하게 몰아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사회를 살면서 모난 부분들은 점차 쳐내졌고 물결은 점차 옅어지면서 나를 흔드는 잡념을 잡기 위해 명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재밌다고 생각했던 삶이 점차 평범하고 잔잔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힘들고 지쳐있던 나에게 라디오는 다시 일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맵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가득한 요즘, 지친 나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러던 중 눈을 감고 목소리에 집중하여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점차 마음의 힐링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찌 다들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보통의 이야기지만 정말 재밌는 사연들이 많다. 그 사연들은 지금 내 이야기 같아서 공감되고, 나도 그랬던 것 같아서 같이 속상하고, 나도 그러길 바라며 함께 기뻐하기도 한다. 라디오는 내가 투영되어 참 신기하고 더 재밌는 것 같다.
아직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마음을 달래었듯이 언젠가는 나의 재밌는 사연을 통해 다른 사람이 마음의 치유를 얻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