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빗방울이 나를 깨우는 시간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먹구름으로 뒤덮인 세상이 펼쳐졌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몇 걸음 걷다 보니,
바람이 불며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
수많은 빗방울에 짓눌리는 느낌.
비 오는 날의 높은 습도는 어찌 보면,
몸의 감각을 깨워주는 듯하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콧속 깊숙이 스며들듯,
비 오는 날의 공기는 내 몸에 추를 달아준 것처럼 무겁게 느껴지게 한다.
무거운 감각이 익숙하지 않아,
그동안 흐리고 비 오는 날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무거움 덕분에
오히려 몸이 천천히 깨어나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비 오는 날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불편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그저 익숙하지 않았던 것임을,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꾸니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처럼 찾아오지 않는
낯선 감정, 낯선 사람, 낯선 날씨 …
그 모든 낯섦은 조심스럽게 여기는 건
나쁜 태도가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이 낯선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
닫힌 내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보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흐린 날씨를, 사랑하게 됐다.
수많은 빗방울들이
나를 천천히 깨우는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