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ith jarrett - The Köln Concert
영화를 보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자들을 위해"라는 말에 이어 온몸이 부서질 듯 불확실한 극한 상황을 마주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유명한 배우의 잘생긴 얼굴에 멋진 주름이 또렷하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 담긴 현실을 향한 메시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누구 하나 확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그가 너무 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오롯이 맡은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만을 위해서 일하는 자'는 얼굴도 모르는 자들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 번이라도 광장과 왁자지껄한 풍경을 본 자라면 그럴 수 없어서 우리는 평생 외로울 것입니다. 나와는 상관도 없는 자들을 위해 산다는 것이 사람의 숙명이고 그 고독함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줍니다.
on keith jarrett - The Köln Concert
왜인지 모르게 나는 새벽녘에 키스 자렛의 전설적인 쾰른 콘서트를 틀어 놓고 밤늦은 시각, 홀로 마주하는 피아노의 외로운 마음으로 영화의 여운을 덮었습니다. 피아노 솔로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장엄한 그 고독의 순간이 파열되고 다시 봉합되며 팽팽한 환회로 일어서는 순간을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전설적인 쾰른 콘서트는 상태가 좋지 않은 리허설용 피아노와 극도로 피곤한 상태의 키스 자렛, 그리고 행정부의 보수적인 허가로 미뤄진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내몰린 극한 상황에서 연주되었습니다. 페달은 거의 작동하지 못했고 고운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하는 컨디션이었습니다. 나는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이 사연을 마음에 담고 시작하지만 금방 잊어버립니다. 키스자렛이 몸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런 불확실한 조건이 아닙니다. 온전한 연주뿐입니다. 나는 그날, 쾰른 오페라 하우스의 수많은 '얼굴도 모르는' 관객들을 가끔 상상합니다. 그들의 얼굴은 금방 내가 아는, 이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모르는 얼굴'이란 '누구나 될 수 있는 얼굴'임을 깨닫습니다.
미지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지의 순간입니다. 나는 '미지'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알 수 없는 것들의 세계는 두렵지만 아직 끝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해 알지 못하는 때에 행해지는 미지의 일들이 세상을 굴러가게 한다고 믿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음지에서 일하는 그들의 일만이 아닙니다. 이 쾰른 콘서트처럼, 고독하고 열악한 모든 일들이 그렇습니다. 나는 이따금씩 미지의 사람들의 외로운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사람은 고독하기 때문에 각자가 개별적인 존재임을 증명한다던 장 주네Jean Genet의 말처럼(『자코메티의 아틀리에』) 홀로 몰두해야 하는 외로운 순간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지의 순간, 미지의 사람을 위한 것일 때 벌어지는 일을 신뢰합니다. 이 믿음이 각자의 외로움을 끌어당겨서 멋진 화음을 만들어내곤 한다는 것을 또한 믿습니다.
키스 자렛의 4개의 트랙은 기승전결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연주와 서정적인 파트를 거쳐 물 흐르듯이 흘러갑니다. 여전히 피아노는 제대로 된 고음을 내지 못하고 키스 자렛의 허리는 아플 텐데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75년도 쾰른에서 벌어진 이 연주자의 고독한 사투가, 연주가 오늘 나에게 또다시 감동을 줍니다. 그에게 나는 얼마나 미지의 존재요, 미지의 순간이었을까요.
신을 생각합니다. 그는 나를 알지만 또한 알지 못합니다. 샅샅이 따져, 내가 누구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신은, 늘 미지의 존재를 위해 자기를 양보하고 그것을 가르칩니다. 넉넉한 음결이, 음과 음 사이에 치는 파도가 어디까지 이 파동을 전달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따지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의 외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 영웅이라면, 당신의 곁에는 참 많은 영웅들이 미지의 순간과 미지의 사람으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1분이 넘는 박수 소리는 동의하는 소리입니다. 나는 박수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들으면서 함께 동의합니다. 나의 불확실하고 외로운 일들이, 글쓰기가, 누군가의 연주가, 말이, 고된 노동과, 묵묵한 열심이 미지의 사람과 미지의 순간으로 향해간다고 믿어 봅니다. 믿지 않으면 또 어쩌겠습니까, 오로지 그 것만이 사람으로 사람을 사랑함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각가 그러하는 한, 우리는 한 팀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 고된 친구들이여.
Mission Impossible 8 & The Köln Conc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