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이여
ㅁ 序詩 /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ㄴ
◇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의 순간을 기억한다.
벽을 등지고, 나를 기다리고 서 있던, 악수를 하자고 내밀던 손,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안경 너머로는 물끄러미 보던... 그냥 만날 때는 숨거나, 놀래키거나 장난을 걸어오기도 했고, 커피 한 잔씩 마시고 나오는데 내리던 진눈깨비... 그 진눈깨비를 바라보고 섰던... 눈꽃송이처럼 날리던 너... 상영관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