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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pr 26. 2021

이팝 꽃 필 때면, 흰 쌀밥이 먹고 싶어서

편지, 딸에게

오늘 영화 보러 가는 길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을 보았단다. 이 이팝나무 꽃은 절기 상 입하 무렵에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여서, 벌써 입하인가? 싶어 달력을 봤더니  입하는 아직 멀었더구나. 올봄은 유난히 날씨가 널뛰기를 해서 3월의 대 폭설이 있는가 싶다가 111년 만의 4월 더위도 있었지! 게다가 분지의 봄 강수량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더니 이팝나무 꽃도 계절을 당겨 이렇게 제 모습을 드러냈구나.


꽃이 하얀 쌀밥 알 같아서 ‘이팝 꽃’ 이라고도 부른다지?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먹고 살던 그 옛날에는 이팝 꽃이 풍성하게 피면 그해는 풍년이라며 마을 잔치를 벌일 정도였다고 해. 엄마가 오늘 본 이팝나무들도 얼마나 그 꽃을 영글게 피웠던지, 보는 내내 기분이 좋더라.


엄마는 이팝 꽃을 보면 왠지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우리 딸의 외할머니가 생각나. 언젠가 아주 오래전였지 싶은 데, 너무 가난해서 쌀밥조차 마음대로 못 먹던 시절이었을 거야. 외할머니는 ‘이밥에 소고깃국’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혼잣말을 하시곤 했어.


일찍 남편을 보내고 홀로 삼 남매를 거두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엄마도 어렸었기에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고, 쌀밥 한 끼의 소중함이 어떤 무게 인지도 가늠할 수 없었단다.

쌀밥 한 공기와, 이팝 꽃

요즘엔 건강을 위해서 하얀 쌀로만 지은 밥을 부러 먹지 않지만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입하 무렵이면 이밥을 짓고 소고깃국을 시원~하게 끓여서 할머니를 추억하곤 한단다. 자식 배곯는 게 죄짓는 거 같다던 엄마의 한숨 섞인 인생을 곱씹어 보면서 ‘이제 밥은 먹고 사니 됐죠?’라고 올해도 혼자 투정 부려 볼 참이야.


길가의 들풀들조차도 엄마 모습에 투영되는 날들은 이제 그만 지나가야 할 텐데...... 곧 기일이 다가오니

이마저도 쉽진 않을 듯 해. 그래서 나이 오십이 넘어도 자식은 그저 자식일 수밖에 없나 보다. 이팝 꽃 흐드러진 4월이 조금은 쓸쓸하고, 또 조금은 아릿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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