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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pr 03. 2021

내 안의 결핍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편지, 딸에게

봄바람이 숨겨 온 야한 발톱을 드러낸 토요일이구나. 뉴스를 잠시 보다 보니 여의도 윤중로, 활짝 핀 벚꽃 길을 롱 패딩에다 머플러까지 두르고 걷고 있는 어린 연인의 모습이 꽤나 흥미롭더라.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벚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른 채, 기숙사 열람실에 갇혀 있는 네 생각이 떠올라 조금 울컥하기도 했지만 말이야.


아무튼 바람이 불든, 꽃잎이 휘날리든 이 봄날엔 실내에만 처박혀 있는다는 것이, 왠지 죄를 짓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자꾸 문밖을 나서게 되는 거 같아. 고백하건대, 사실 엄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 봄꽃놀이라던가, 단풍구경을 때맞춰 가본 적이 없어.  아버지의 이른 부재로 인한 생활의 궁핍함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다 자랄 때까지도 그런 것들로 인한 슬픔이나 우울은 별로 없었던 거 같아. 어쩌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성장기를 겪었다고 생각해버렸을 수도 있지.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그게 아니었더구나. 어려웠던 시절에도 봄이나 가을엔 도시락을 싸서 가까운 곳이라도 소풍을 다녔던 친구들이 그렇게 많았더라고, 여름엔 해수욕장도 필수코스였다지? 어린 시절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성장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고 이후에 느낀 엄마의 결핍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긴 했어. 그저 책에서 만나는 세상이 내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기에

사회에 나와서 부딪히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 당황하기가 일쑤였단다. 영악하지 못한 성격 탓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


하지만 또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구멍이 숭숭 나 있던 결핍 투성이의 엄마였기에, 까칠했던 성장기의 모습을 껍질로 보듬은 채,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채워나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그래서 사람들은 엄마를 보면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라고들 평가하곤 해. 쑥스럽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부분이야. 가진 것이 없어 자신감은 바닥이었어도 하나하나 내 것들을 채워나가면서 스스로를 성장하게 하는 동력을 만들어내고 자존감으로 치환하는 것! 인생,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해 봐도 될 일 아닐까 싶어. 그러면서 상처투성이의 꺼칠한 내 모습마저도 궁극적으론 사랑하게 되는, 기적의 순간도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결핍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런 태도만큼은, 엄마가 네게 꼭 물려주고 싶은 소중한 자산이니 우리 딸도 기꺼운 맘으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오늘처럼 봄바람이 밀린 한숨을 한꺼번에 데려오는 어느 날, 너의 그 한숨을 일시에 거둬들일 힘이 될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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