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과도 같아서
편지, 딸에게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엄마는 아주 가끔이지만 ‘우울의 그늘’로 숨어들곤 한단다. 숨어든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 하게 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픈 마음이 들곤 하니, 영~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아무튼, 요 며칠 잘 먹지도 못하는 맥주를 두 잔쯤 마셔야 잠을 청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구나. 우울의 얼굴을 직면하는 일은, 경험한 사람들에겐 더욱더 고통스럽게 다가오곤 하는 법이야. 서슬 퍼런 이빨을 드러내고는 영혼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갉아먹는 걸 알면서도 속절없이 당하고 있어야 하는 심정이란!!
이때마다 엄마의 멘털도 유리 같아져서 무기력함의 극치를 보여주곤 한단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이지만 더욱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건 우울이 데려가는 심연의 우물이 너무도 어둡고 깊다 보니, 그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야. 지금 같은 여름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하고도 끝 간 데 없이 섬뜩한 기분. 절대 다시 느끼고 싶지 않지만 부지불식간에 맞닥뜨리게 되는 이 공포를 어떻게 하면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햇볕과 바람과 공기의 순한 속삭임만이 유일한 치유의 길인지, 오늘도 엄마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혼자서 시간을 부여잡고 속울음을 울고 있구나. 내일은 어떤 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 뒷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이토록 불안하지만은 않을 텐데 싶네. 필시 단단하고 올곧은 척추 뼈를 가진 사람의 모습이라 일단은 믿어보고 싶구나. 얼른 커피 한 잔 마시고 일어나 걸어야겠다. 걷고 또, 걷는 것만이 이즈음의 유일한 구원이기에.
※커버 이미지/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