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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ug 18. 2021

슬기로운 '관태기' 극복

편지, 딸에게

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가끔 카카오 톡 프로필을 점검한단다. 방송 일을 오래 해 온 엄마라

언뜻 봐서는 ‘ 이 사람이 누구지?’라고 생각되는 인물들이 연락처에 굉장히 많거든. 그중에는 혹여 다시 일을 할까 싶어 살려 둔 출연자들 , 그리고 가수나 매니저들의 연락처도 있는데,  그걸 정기적으로 지워나가기 위해서야. 물론 게 중에는 한, 두 번 만나고 잊어진 관계들도 다수 포함돼 있지. sns로 소통하는 세상이다 보니 많게는 500명도 더 넘게 연락처에 저장이 돼 있던 적도 있었단다.


한 번씩 그렇게 프로필을 볼 때마다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 경험, 너도 해 본 적이 있을까? 이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가끔 프로필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일상을 의도치 않게 공유하게 된다는 게 많이 불편하기도 했단다. 요즘 ‘관태기’ 란 말이 미디어 매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더구나. 관계의 권태기, 이리저리 얽힌 관계들이 가져오는 문제들에서 스스로 본인을 격리시키고 벗어나고자 하는 시기,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시기를 겪지 않을까 싶다.


요즘 네 또래의 청춘들이 이런 관태기를 지나가는 한 방편으로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택한다는 데, 엄마는 왠지 공감이 가더구나. 워낙에 ‘혼 밥’이며 ‘혼 영화’ 그리고 조금 더 단계가 높다는 ‘혼 여행’까지 잘 해내는 엄마라서 그럴까? 별 것도 아닌 관계들에서 오는 피로감이 느껴질 때면 관계의 청소를 위해 숨겨둔 빗자루를 꺼내 들곤 한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심리적 거리가 있어야만 편안함을 느끼거든. 그 심리적 거리에 조금이라도 더 친밀하게 다가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잘못됐다는 건 아니야. 각자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기 전에 먼저 동의를 구하는 것, 그게 ‘관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 아닐까 싶더라.


오늘도 엄마는 다시는 연락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 10여 명을 차단시켰다. 어쩌면 그들의 연락처에선 이미 오래전 엄마가 차단됐을 수도 있겠지. 다행인 것은 이런 것들이 전혀 슬프거나 아쉽지 않다는 거야. 혼자 와서 또 혼자 가는 세상. 무에 그리 미농지처럼 얄팍한 관계들에 휘둘려 살아갈 소냐! 한다.^^ 어쩌면 ‘외롭다’는 건 우리가 늘~ 생각해 온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 낸 객관의 감정이나 가치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밤벌레 소리 소슬하니 처서가 머지않았구나. 고요 속에 침잠하는 밤, 되길 바란다.     

    

 ※커버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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