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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ug 04. 2021

사람의 나이테는 눈빛에 새겨진다(혹은 목소리에도)

편지, 딸에게

엄마의 작은 취미, 혹은 소일거리 중 하나가 동네 정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이란다. 처음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주변 풍경을 감상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주객이 전도돼 오가는 사람 구경이 제일로 재미있구나.


지나다니시는 분들한테는 백번 죄송한 일이지만, 어쨌든 최대한 그분들 신경 거슬리지 않게, 주시하는 시간은 30초를 넘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지.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도 하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백 명 이상 정자 앞을 지나다니는데, 어쩐지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없으려니와 더 신기한 건 눈빛이 정말 제각각이더라는 거야.


그 짧은 시간에 눈빛을 완전히 파악하긴 힘들지만 살아온 연륜이 어디 내놔도 꿀릴 정도는 아니니, 엄마 얘기를 믿어도 돼. 관찰일지를 간략하게 옮겨보자면 이런 식이야. 항상 앞을 주시하며 걷는 사람들의 눈빛엔 힘이 있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대다수지. 어깨가 처져 걸어가는 사람들의 눈빛엔 음영이 드리워있고. 아! 엄마가 좋아하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맑은 호수가 하나씩 담겨 있기도 하지.


희한하게도 한 사람의 뒷모습과 눈빛은 거의 같은 색깔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고. 해서 내린 엄마 나름의 결론은 ‘사람의 인생은 눈빛에 나이테를 새겨가며 흘러간다.’라는 거야. 물론 여기엔 ‘뒷모습’이라는 함수가 유의미하게 작용하고.


‘깊고 푸른 눈’ 이 매력적이었던 한 여인이 중년에 이르렀을 때 어떤 빛으로 세상의 한 부분을 비추고 있는지 몹시도 궁금하네.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내 눈빛은 늘~생경하기 마련이니까. 언젠가 우리 딸과 무릎을 맞대고 서로의 눈빛에 새겨진 튼실한 나이테를 헤아리며 얘기할 날들도 오겠지? 그날에 부끄럽지 않도록 오늘도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하자.    


커버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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