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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Sep 16. 2021

임신 9개월의 몸으로 끓인 해물탕

그땐, 엄마가 좀 야속했다

사느라, 세상에 부대끼느라 좀처럼 보지 않던 달력을, 가까워오는 명절 때문에 보게 된다. 마음은 절대 그것을 허락하지 않지만 이쯤 살아오고 보니 마음보다 먼저 몸이 일어나 행동하는 데, 막을 뾰족한 도리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 같아 서글퍼 지기도 한다.


'어, 혜연이 결혼기념일이네?'


두 살 터울이 지는 막내의 결혼기념일이 오늘이라는 사실과 함께, 오래전 그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가 결혼한 두해 뒤, 동생도 화려한 싱글을 마감하고 결혼을 결심했었다. 우리 삼 남매 중 가장 외로움을 많이  동생였라, 시집을 일찍 갈 줄 알았지만 꽤 오래 미혼인채로 일을 하며 지내오고 있던 터였다.하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었음인지 서둘러 결혼을 선언한 것이었다. 자매처럼 지내는 언니가 주선한 선자리에서 지금의 제부를 만나 6개월쯤 사귀더니 그렇게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편입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동생이 결혼할 무렵, 나는 임신 막달이어서 몸은 부을 대로 붓고 무거워져, 동생 결혼식 사진 속의 나를 볼라치면 웬 달덩이 하나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설, 동생의 결혼 이야기를 쓰자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바로 동생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아침,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 것이다. 막내까지 시집을 보내 한결 홀가분해진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한 옥타브가 높아져 한껏 명랑했다.


"혜원아, 오늘 혜연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인 거 알재? 가들이 저녁쯤에나 올끼라는데, 니 얼른 서문시장 가가, 해물탕 거리 사서 범어동으로 건너오니라. 해물탕에는 끼(게의 경상도 사투리) 도 실한 놈으로 한 댓마리 넣고"


엄마 특유의 거두절미 화법은 둘째 치고, 임신 막달이라 쏟아지는 잠을 깨지도 못한 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알기야 알지, 근데 갑자기 해물탕은 와?"


"아이고 야야~윤서방(제부다)이 그래~해물탕을 좋아한다 안카나!! 그라이 해물탕을 끼리 조야지!"


해, 물, 탕..이라고 입속으로 되뇌어 봤다. '그래, 갖은 해물에 추석 무렵 막 나온 가을 무를 넣고 콩나물이랑 미나리도 넣고 해서 끓여내면 맛있겠네. 근데, 왜 그걸 내가?'


"엄마, 오늘 토요일이마, 새언니도 올끼고 할낀데 새언니보고 하라 캐라"


"그건 안 된다. 해물탕은 니가 끼리야 맛있다"



이건 숫제 명령에 가까웠다. 9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분지의 여름은 긴 꼬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고, 추석이라는 거대한 명절 밑이다 보니, 서문시장에는 대목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일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를 이 무거운 임신 막달의 몸을 이끌고 가서 장까지 봐오라고? 늘 배려심이 넘치는 우리 엄마의 처사라고는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또 마땅히 변명할 거리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받을 밥상이 떡 벌어질 정도는 아니어도 먹을만하게 근사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맘이기도 했으니까.


살고 있던 집에서 서문시장이 대중교통으로도 그나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택시비조차 아까워 버스를 타고 서문시장으로 가서 엄마가 일러준 대로 아주 크고 실한 끼(게) 를 네 마리나 넣고, 오징어에 소라에 해물을 잔뜩 첨가한 해물탕 거리를 샀다. 사람 반, 물건 반인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무릎이며 발목이 시큰하게 저려왔지만 저녁시간에 맞추려면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뛰는 것도 아닌, 그렇다걷는 건 더더욱 아닌 내 모습을 본 어떤 할머니가 한마디 툭 거드신다.


"아이고 새댁이, 막달에 그래 무거운 거 들고 카며는 안됀대~이, 그라고 뛰도 안되고, 와 그래 무거운 걸 혼자 들고 왔다갔다 해쌓노!" 할머니의 말씀이 등 뒤로 따갑게 꽂히면서 왈칵, 굵은 눈물 몇 방울이 맺혔.


뒤에서 보면 임신한 표시도 안 난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긴 해도,  출산예정일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딸에게 해물탕 거리를 시장에서 사 와서 손질하고 끓이기까지를 맡긴 것은 무슨 심사였을까. 표면적으로는 엄마 음식 솜씨를 그대로 내림한 큰딸의 해물탕을 제부에게 맛 보이고 자랑하고 싶다는 복안이 깔려 있었다지만, 사실을 파고들면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어쩔 수 없음이 자리하고 있었음이다. 일을 하는 며느리에게는 절대 시키지 않겠다는 무언의 항변 같은 거. 나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몸이 고단하니 마음이 곧 울퉁불퉁, 오르락 내리락이 된다.


친정이 있는 범어동까지는 또 꽤 거리가 있고 큰 바구니 두 개를 든 채로 뒤뚱거리고 싶지 않아 택시를 집어탔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속에서는 해물탕이 뜨겁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즐겁고 기쁜 날이니 내가 참아야지, 속으로 골백번도 더 다짐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이모와 가까이 사시는 외숙모까지 오셔서 일손을 돕고 계시는 게 보였다. '그래, 이모도 있고 외숙모도 얼마나 음식을 잘하시는 데 꼭 이래, 내까지 동원을 해야겠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뒤로한 채, 주방에서 사 온 재료들을 재빠르게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혜워이, 제부 온다고 해물탕 끼린다매? 우리 혜워이는 엄마 닮아가 우째 그래 우지도 않았는데 음식을 잘하는고 모르겠다"


눈치가 빠른 이모는 엄마와 내 얼굴을 번갈아보며 뭔가 싸한 분위기를 워보려 애쓰셨다.


"제가 뭐예, 그냥 내림이지 뭡니꺼 엄마 솜씨 내림."


육수를 내고, 콩나물을 다듬고, 조개들을 해감시키는 동안, 엄마는 이렇다, 저렇다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거였다. 물론 해물탕이 메인이라고는 하지만 전이며 잡채며 준비할 것이 많아 그런가는 몰라도, 배불러 장을 봐오고 삐질삐질 땀까지 흘려가며 음식을 준비하는 큰 딸에게 '수고했네. 고맙네' 공치사 한마디 안 하시는 건 어쩐지 내가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던 거다. 잠잠해졌던 불이 다시 저 깊은 속으로부터 끓어올랐다. 우리가 아무리 기독교 집안이라, 미신을 믿진 않는다지만, 임신하면 보기 좋은 것, 듣기 좋은 것에만 집중하게 한다던데, 갑각류 손질까지 시키다니! 기어이 심통이 나더니 심사가 뒤틀리며 꽈배기 같은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엄마, 내 임신 중인 거 모르나? 와 이런 거를 내 시키는데? 내 신혼여행 갔다 왔을 때 혜연이는 머 시킸는데?

음식 하기 싫어서 그런기 아이고, 내 몸도 무거운데, 서 있기도 힘들고, 고마 나가가 한 그릇 사묵든지 우야믄 되지..이 근방에 해물탕집 천지삐까리잖아!"



어떻게든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참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 입 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음식 준비 때문에 열기로 가득한 좁은 주방을 폭파시켜버릴 만큼 큰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모와 외숙모는 주섬주섬 옷을 챙기시더니 그만 가봐야겠다는 말만 남기시고 떠나셨고, 엄마는 입을 꾹 다무신 채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망부석처럼 그렇게 서 계시는 거였다. '임신한 게 무슨 벼슬이라고.. 나도 참 어리석네' 곧 후회가 밀려왔지만 수습을 할 묘책이 떠오르질 않아 그저 애꿎은 콩나물만 헹구기를 여러 차례.... 그래도 내가 먼저 나서야 했다.


"엄마, 미안하다. 내가 아무리 남들 보기에는 몸이 가벼워 보여도 막달이 되이께네 힘들다 아이가. 그래가, 고마 안 할 소리를 했다 그냥 이자뿌라"


"....."


"이자뿌라고 엄마."


"혜워나, 엄마는 니가 미더버가 그랬다. 워낙 미더버가(믿음직 스러워서) 식당 해물탕을 한테 우째 갖다 대겠노? 니가 끼리는 해물탕은 시원하고 감칠맛 나고 한 번 먹으면 또 먹고 싶어지는 그런 맛 아이가! 그거는 이 엄마도 흉내 못 내는 맛인기라, 그라이 새 사위한테 자랑이 하고 싶어가 그런 기라. 알겠재? 속 상했다믄 엄마도 미안하대이!"


부부싸움만 칼로 물 베긴줄 알았더니, 우리 모녀의 때 아닌 다툼도 이토록 허망하게 끝날 줄이야! 육수를 정성스레 내고, 집 된장을 베이스로 해서 간한 그날의 해물탕은 제부의 입맛을 사로잡았음은 물론이고, 거짓말 안 보태고 온 식구가 국물 한 가락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은 최고의 요리가 되었음이다. 동생과 제부는 그날의 해물탕에 이 언니와 처형의 눈물 섞인 분노가 들어가 있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을까? 드디어 막내까지 무사히 치웠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 정말 홀로 지내야 한다는 약간의 상실감으로 그~ 입맛이 다디단 우리 엄마가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 했던 건 또 눈치챘었으려나.



매년 9월, 추석이 다가올 무렵이면 완전히 진화되었다고 생각했던 그날의 섭섭함이 슬며시 밀물 져 오곤 한다.

그래서 부러 해물탕 거리를 준비해 끓여내고는 한다.(아따! 뒤끝이 참 기네요^^) 기껏해야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동생인데도 막내가 누릴 수 있는 어리광과 특권을 엄마는 무한대로 주셨고, 내게는 '맏딸'이라는 다소 버거운 소명을 부여하신 듯해서 말이다. 그래서 포기하고 잊고 산 것도 많았는데......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내음을 풍기며 미각을 자극하는 '나의 아름다운 해물탕' 앞에서, 기억은 다시 한번  무한 도돌이표로 재생돼 뒤늦은 위로를 건네고는 한. 감칠맛을 집대성한 9월의 해물탕이 끓고 있다, 그날의 표정과 기분과 모녀의 정적까지 보듬은.


커버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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