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

by 쪼교


희윤은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혈액형으로 치면 A형과 B형, 성향 검사로 치면 INFJ와 ESTP.
나는 사소한 일에도 곧잘 불안에 잠기지만, 희윤은 세상에 한 치 망설임이 없다.
내가 움츠릴 때, 그는 언제나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신호를 위반하는 차만 보아도
나는 ‘저 차가 달려들면 어쩌지’ 하고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그럴 때 옆을 보면, 희윤은 어느새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있다.


“뭐 해?”
“신고하려고.”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단순함.
하지만 그의 세계는 간명하다. 잘못했으니 벌금을 내야 한다, 그뿐이다.

나는 그렇게 살 수가 없다.


뉴스에 나오는 낯선 범죄도, 길모퉁이에서 벌어진 시비도
마치 내가 그 당사자인 듯 전부 받아들인다.
이해할 수 없는 악행조차 내 몸을 관통해 들어온다.
그러니 몸은 병들고, 마음은 늘 파도처럼 흔들린다.

특히 부모님의 병환은 나를 더 깊이 흔들었다.
밤마다 이유도 모른 채 심장이 덜컥거렸다.
걱정의 실체를 잊고도 불안의 그림자는 나를 삼켜버렸다.



어린 시절 폭력의 기억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죽음의 행렬 같던 시절.
왜 맞아야 하는지, 왜 그토록 무력해야 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결혼 후 두려웠던 것은, 나 또한 언젠가 똑같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였다.
그래서 불임 판정을 받았을 때, 나는 모순된 안도감을 느꼈다.
불행이었으나, 동시에 구원이기도 했다.

한 번은 희윤에게 물었다.


“부모님이 싫은데… 또 아프다고 하면 걱정이 돼. 어떻게 해야 해?”

그의 답은 간단했다.
“전화해. 그러면 내 불안이 사라지거든.”


그의 세계에는 언제나 ‘나’가 우선이다.
아픈 건 부모님이지만, 불안한 건 자기 자신.
그래서 그는 곧장 전화를 걸고, 불안을 지워버린다.
나는 늘 말한다.


“나도 너처럼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희윤은 웃으며 말한다.


“규호 씨는 불안과 걱정에게 진 거 같아. 그래서 그들에게 복종하면서 사는 거 같아.
이겨봐. 그럴 수 있어.”


연애 초기에 희윤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제목은 백설 공주를 사랑한 난쟁이.
희윤은 벙어리 난쟁이 ‘반달이’ 역이었다.
세 시간 내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온몸을 비트고 달리며 반달이의 마음을 무대에 흩뿌리고 있었다.


“답답하지 않아? 말도 못 하는데.”


“아니, 반달이는 말만 못 할 뿐, 더 큰 마음과 사랑을 갖고 있어.”


그 말이 요즘 따라 자꾸 떠오른다.
나는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표정한 얼굴이 ‘무섭다’는 오해를 산다.
사실은 웃음 많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늘 속으로만 웃었다.
희윤의 반달이는 달랐다. 소리 없는 몸짓으로도 세상을 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옷을 산다.
제철도 무시하고, 값도 따지지 않고, 마음에 들면 집어 든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옷으로 발설하듯.
나는 옷을 입으며 표정을 짓는 중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백일장에서 시로 입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썼다.




바다 끝에 닿았습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희망일 수도, 또 다른 두려움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바다는 그 자체로 약속입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언제나 다른 시작을 품고 있으니까요.

나는 믿습니다.
저 수평선이 막다른 벽이 아니라는 것을.
깊은 어둠이 아니라는 것을.


혹 길을 잃는다 해도,
방향을 헤맨다 해도,
언젠가 그 끝에서는
더 넓은 빛과 자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나는 세상의 끝에서 멈춰 본 적이 있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믿은 순간,
돌아보니 작은 바다가 열려 있었다.

나는 선택의 문턱에서 자주 묻는다.
나는 문제의 일부인가, 해결의 일부인가?
결국 답은 없다.
삶은 내가 바꾸어 나가야 하니까.


바다로 들어가듯,
잘못 항해할 수도 있고 미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이 꼭 불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바다는 인생과 닮아 있다.

알 수 없는 파도 앞에서
우리는 불안과 희망, 기억과 욕망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야 비로소 삶의 근원을 마주한다.


“내가 왜 항상 즐겁게 사는 줄 알아?”


희윤이 말했다.


“무조건 지금 이 순간이 자유고, 행복이고, 축복이야. 인생은 오늘 하루뿐. 아시겠습니까, 규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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