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Jan 26. 2024

1월이 부담스러운 이유

자기 암시는 부담이 아니다

내 주변은 1월을 모두 부담스러워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회사에서는 1월 경영성과 계획 및 목표를 세워 한 해 농사를 계획하는데 그 목표 자체가 임직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기존 목표를 의지목표로 또 나누어 더 높은 수치의 목표를 세운다. 달성 시 주어지는 달콤한 보상과 곁들여서 말이다. 한 달, 한 달 지나며 영업부서는 숫자로 소설을 써가야 한다. 이 정도 못 팔건데 목표에 맞게 하반기로 자연스럽게 숫자를 미룬다.

이 외에도 작년의 업무 성적을 판단받는 성과평가나, 새로 또 적응해야 하는 인사발령은 덤이다.


 개인에게는 또 어떤가. 남들이 다 새해목표를 세우니, 나도 세워야만 할 것 같다. 이룰지 못할 걸 알면서도 거창하게 세워야 마음 한편이 편안하다. 편안한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으로 치환 돼 자기 비하 및 자조적인 한탄으로 이어진다. 가정에서의 멋진 남편, 가장, 친구에겐 좋은 친구, 부모님에겐 효자, 직장에선 든든한 프로로 각인되고자 1월은 더 힘차게 나아가야만 할 것 같은 심리적 부담이 존재한다.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본인을 믿고 긍정 확신을 가지는 자기 암시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낀다.

“나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나아지고 있다”

라는 이 말은, 어제와 나는 사실 똑같은데 무언가 더 좋아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까지 부담을 안긴다.


 우리는 자기 암시를 할 때만큼은 이 모든 부담에서 멀어져야 한다.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데 있어서는 당연 본인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가령, 내 아들 딸이 이번 중간고사에서 100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아들에게,

“이번 시험, 열심히 공부해 봐^^”

라고 말할 수 있다. 설령 아들, 딸이 열심히 공부를 안 했을지언정 아들, 딸이 시험을 잘 봤으면 한다는 내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결과가 안 좋으면 실망을 한다.

하지만 자기 암시는 본인에게 직접 욕망을 불어넣는 일이다. 어제보다 내가 나아졌다, 올해는 좋은 성적을 받을 거다라는 확신이 설령 실제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쉽게 용서가 된다. 실망도 내가 나에게 하기 때문에 관계에서의 아픔도 없다. 다시 또 하면 된다.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손해 볼 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딱 아침에 30초만 투자하면 그뿐이다. 글로 한 줄 적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나.

자기를 암시하는 걸 전혀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일필요가 없다. 나에게 확신을 불어넣는 일은 우리 삶에서 작은 희망을 간직한 채 잔잔하게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자기 암시로 마음의 안정을 가지는 일은 무슨 일이든 가능케 한다. 주식시장을 보자. 내가 생각하는 주식은 기업의 내재가치나 전망분석의 결과보다 전형적인 심리싸움이라 생각한다. 어제 테슬라가 실적발표를 하며이틀 동안 약 -20%가 떨어졌다고 한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손실회피성이 있기 때문에 이럴 때 안절부절못하며 손절매를 하며 돈을 잃는다. 또 다른 어떤 이는 기다렸다가 더 매수를 해 시간이 흘렀을 때 익절을 한다. 테슬라 주주에 빗대어봤을 때 결국 심리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나중에 돈을 벌거나, 잃느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자기 확언은 심리적 동요를 막고,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닌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매사에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암시에 반하는 일이다. ‘왜 오늘은 암시가 안 되지? 왜 오늘은 암시를 한만큼 효과가 안 나지?’라는 생각자체가 필요 없다. 전혀 숙제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습관처럼 조금씩 만들어가면 그뿐이다. 설령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떤가.

본인의 일에 성공한 사업가나, 운동선수들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되, 매경기마다 혹은 모든 프로젝트마다 성공하지는 않았다. 어제 아시안컵에서 환상적인 프리킥을 넣은 이강인도 어떤 경기에서는 대중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하듯 말이다.

요가도 똑같다. 요즘 주 3회 요가를 하는데, 나에게 조금이라도 어려운 동작이 있으면 선생님은 억지로 하지말고 지켜보라고 한다. 아니면 그 자세를 위한 아주 기본적인 동작만 가르쳐준다. 시간이 필요한 일인 만큼, 못하는 부분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내 경험을 들어도 이는 똑같이 성립된다. 첫 책을 내자고 출판사 사장님이 내게 전화 왔을 때 이런 말을 했다.글 전체는 잘 모르겠는데 그중 한 챕터가 너무 좋았다고. 계속 생각난다고. 그리고는 분량을 채울 때 내가 어떤 글을 쓰든 검토도 크게 안 하고 바로 책으로 냈다. 그 이유는 뭘까? 어차피 사장님이 좋아한 그 부분이 있기에 그렇다. 원고의 모든 부분이 완벽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은 주로 9개에서 12개 정도의 노래가 있는데 그중에서 진짜 좋은 곡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결국 2개~3개뿐이다. 근데 우리는 이걸 명반이라고 일컫는 것처럼, 매 순간 완벽해지려 할 필요가 없다.


자기 암시는 완벽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다 보면 완벽해지는 것이다. 하루에 30초만 투자해 보자.

나를 안 믿으면 누가 나를 믿는가?



이전 03화 우리 대부분은 왜 다 평범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