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오직 읽고 쓰는 것만이 하루 중 의미있는 시간
내가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것이 언제였지? 정확히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그때도 선행교육이 유행이었어서 내 주변 친구들은 영어학원, 수학학원에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글짓기 학원에 보냈다. 아, 정확히는 글짓기 선생님 집에서 그냥 글을 쓰는 것이다. 당시 내 친구 4명이랑 팀을 짜서 같이 글짓기를 했다. 일주일에 딱 한번 3시간동안. 회비는 한달에 단돈 3만원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4명이 짝을 지어 늘 선생님 집으로 가 아무 글이나 썼다. 주제는 없을 때도 많았고, 매주 달랐다. 보통은 신문을 보거나, 그 주에 있었던 토픽에 관한 글들이었다.
글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주제에 대한 내 의견을 글로써 피력하지 못했을 때는 그 생각이 나올 때까지 집에 못갔다. 다만, 내 주장과 생각이 틀렸을지언정 선생님께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말 하지 않으셨다. 그냥 무슨 말이든 쓰기만 하면 집에 갈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어느 날, 신문기사를 1시간 동안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너무 어려워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나머지 세명의 친구들은 자신있게 글을 써내려가는데, 그 글쓰는 한 시간이 너무 초조하고 불안했다.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그 날 결국 일기를 썼다. 그 글에서 솔직하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한 일기를 썼다. 선생님은 그 날도 어김없이 웃으면서 아무 꾸중없이 내 일기를 첨삭해주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주일에 한번 쓰기 시작한 글짓기 수업은 고등학교 1학년 9년동안 계속 했다. 그 중에 정답이 틀린 글들이 80% 이상이 될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쓴 글의 요지에 대한 지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며, 다른 관점의 글들을 공유해주시기만 했다. 오직 내가 쓴 글에 대해서는 맞춤법, 문법, 글의 순서들만 첨삭해주셨다.
15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 가르침의 의미를 뒤늦게 생각해냈다. 어릴 적 늘 글을 쓰며 든 생각은 "나는 항상 정답을 틀리는데 왜 선생님은 거기에 대한 꾸중을 하지 않으시지?" 였다. 늘 모범답변과 다른 요지의 글을 쓰는데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글쓰기란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의견이 있다면 토론을 통해 정답을 찾아가거나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면 된다. 수학문제처럼 맞다/틀리다가 없다. 모든게 주관식이다. 내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정답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어릴 적 선생님이 가르쳐준 글쓰기에서 가장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글에 정답은 없다? 아니다. 무엇이든 그냥 계속 쓰는 것이다. 늘 일주일에 한번씩, 한달에 4개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써 봄으로써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고, 사고가 확장되고, 그사고에 대한 근거를 붙여 내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글을 계속 쓰면 내 지금 현재의 위치, 내 스스로에 대한 객관성을 기를 수 있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배워야할 것은 산더미고,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글을 써보면서 더 찾아보게 된다. 필사를 하거나 서점에 가보면 쉽게 읽히는 글들이 정말 많다. 더 노력하고 사유하고, 더 양질의 글로 나를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면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볼품없고 형편없는 글과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이 세상 누군가에게는 그 정보가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글을 쓰면서 내 세계가 만들어지고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줄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글을 매일 쓰면 쓸수록 돈처럼 자산이 쌓이는 것이다. 경험을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일주일 전의 지금 이 시간에 내가 뭘 했었지? 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을 글로 기록하면 그것은 곧 내 모든 경험의 산물이 된다. 사는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대로 사는 현명한 삶이 펼쳐진다.
그럼 지금 당장 글만 써야할까? 내가 전업작가를 꿈꾸고 있다고 하자. 혹은 내가 글쓰기를 너무 좋아해 당장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전향한다고 하자.
이 두 가지 모두 추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번째, 직업을 가져보지도 못한채 애초에 전업작가를 하고자 한다면 인생에서 잃는 기회비용이 너무 많다.
모든 글은 내 경험과 지식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꽃다운 나이 20대, 전업작가로써 방 안에만 틀여박혀 글쟁이가 된다면 아무리 글쓰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칫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고, 편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밖에서 사람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해야 사람들과의 연대감도 느끼고, 그 사이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배움, 다양한 가치관, 생각들을 통해 본인의 사고를 넓혀나갈 수 있다.
경험만 많은 사람과 20대부터 집에서 글만 쓰는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된다는 것이다. 꼰대가 되어 상대방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최고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험과 글쓰기가 함께 동반되어야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이유다.
글을 쓰는 또다른 이유는 모든 일의 시작은 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기획안을 작성한다고 할 때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말로만 전달하거나 바로 영상으로 만들까? 아니다. 메모를 하거나 글로 표현 해야한다. 그래야 내 상사도 설득시킬 수 있고 실제로 그 기획안이 실행될 확률이 높다. 사업을 해도 한 아이템을 팔기 위해서는 홍보물도 제작해야하고, 왜 내가 이 아이템을 팔아야하는지 글로 명백하게 표현해야한다. 글이 모든 일의 시작인 것이다.
글은 심지어 한번 쓰면 사라지지 않는다. 또 다른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누가 그 글을 복제한다고 하더라도 그 글을 쓴 본질적인 생각과 사고는 나에게 있다. 글이 모여 책이 되고, 책을 팔아 지식을 나누고 돈을 벌 수도 있다. 최근에 전자책 시장이 뜨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셋째, 표출해야하는 사람은 표출해야한다. 표출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이 곪는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보자. 글을 쓰면 인풋으로 받았던 직장이나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아웃풋으로 다 풀어낼 수 있고 내면적으로 생각의 정리가 된다. 글을 쓴 장소에서 내 스트레스를 모두 놔두고 온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내 지식과 정보, 자산이 쌓이는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자산이 쌓이면 나의 레퍼런스가 쌓이게 되고, 그것이 곧 내 브랜드가 된다. 책을 쓰면 강연이나, 컨설팅 추후 다양한 기회가 올 지 누가 아는가?
사람들은 묻는다. 글을 쓰면 이렇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데, 그럼 글은 어떻게 처음부터 쓰기 시작해야할까? 시작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첫째, 절대 소재에 억압받으면 안된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소재에 대해 다뤄봐야지" 혹은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너무 평범한 날이니까 글을 쓸 게 없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재는 온 사방에 널려있다. 만약 퇴근 후 수영을 한다면 수영에 관해서 써 볼수도 있는 것이고, 오늘 커피를마셨다면 커피에 대해 써 볼수도 있는 것이다. 소재에 억압받지 말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 사물, 사건에 관해 무슨 주제든 써 내려가보자.
둘째, 잘 써질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글을 처음 쓰면 내가 쓴 글도 내가 이해를 못할만큼 형편없을 때가 있다.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글이 잘써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쓰다보면 잘 써지는 것이다. 글을 쓰는 와중에 다른 연결고리가 떠올라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모든 기회는 글을 쓰면서 시작된다.
글은 내가 힘들때 나를 지켜줄 삶의 무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