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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씨바 Feb 27. 2024

러시아의 중심에서 살려줘를 외치다

현지 언어를 못하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러시아 편)

* 음악 이야기인 [히든트랙] 이외에도, 음악이 아닌 사는 이야기 [살아보니, 살다보니]도 이글과 함께 시작하려 합니다. 

* 활동하던 커뮤니티, 까페 등에 제가 올렸던 글 중 일부를 발췌하여 올립니다.



여행을 갔을 때 그 나라 언어를 못하면,

별의 별일을 다 겪게 되는데...(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일수록 더더욱)

해외 출장과 여행을 많이 다녔던 내게도 그런 에피소드가 참 많다.




Episode 1: 러시아 편


When: 1998년 7월경

Where: 러시아 세인트 피터스버그(상트 뻬제르부르그) KFC

상황:

- 러시아어 알파벳과 몇몇 단어 정도 알던 내가 어학연수로 러시아에 가게 됨

- 러시아에 입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친구들과 KFC에 감

- 러시아어에 능숙한 친구의 도움으로 치킨이랑 치킨버거 등 먹었으나, 다들 한참 먹을 때라 그런지 너겟 몇 조각 더 사다 먹는 것으로 협의완료



내가 사오고 싶었고,

내가 직접 가서 주문하고 직접 사오겠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이해는 안가지만, 

갑자기, 문득, 며칠동안 늘어나 있었을 것 같은(?)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고, 일취월장한 내 실력을 친구들에게 뽐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러시아어 실력을 잘 아는 친구들은 무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절 바라보았지만,

"야, 나도 이제 러시아어 어느 정도 할 줄 알아!!!(며칠만에?) 내가 사 올 수 있어!!!"

라며 당당하게 주문을 하러 갔다.



나: (러시아어로 더듬더듬 거리며) 치킨너겟 8조각 주세요

주문받던 분: @#$%#%@$#^$&@^@%^#&@&#^@(러시아말)....


나: (다시 한번 러시아어로) 치킨너겟 8조각, 빠좔루이스타(영어의 Please)

주문받던 분: @#$%#%@$#^$&@^@%^#&@&#^@(러시아말)....


나: (러시아어로) 다다다다다다다(영어: Yes, Yes, Yes, Yes, Yes.....)



돈도 이상하게 많이 받는 것 같고...(돈 개념도 없던 때여서 내가 가진 지폐와 동전을 손에 올려놓고, 최대한 순진한 표정으로 직접 가져가시게 했다)

음식도 이상하게 한참 걸리더니...



악!!!!!!

그분은 "치킨너겟 8조각"이 아닌 "치킨버거 8개"를 트레이에 꼭꼭 눌러 담아 내게 주셨다!!!



"어, 이거 제가 주문한 거 아닌데요?"



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내 초라하고도 휑한 러시아어 실력은 그런 표현까지는 전혀 할 수 없었던 터라...


"스파씨바~!!!!!!!(영어로, Thank you!!!)!"

(헐, 내 맘과는 달리 감사하다니... ㅠㅠ 이런 제길... ㅠ 그나마 다행인 건, "스파씨바"가 마치 욕 같아서... 마음 속 스트레스를 순간적으로 약간이나마 풀 수 있었다. )


트레이 한가득, 치킨버거 8개를 쌓아서 자리로 돌아오는 내 모습을 보던,

친구들의 그 눈빛,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ㅠㅠ


그날 하두 물리게 치킨버거를 먹었던 바람에...

그날 이후로, KFC에 잘 안 가게 되었고.


이 일로, 

러시아어에 대한 내 공포는 더 커지게 되었고,

전에는 없었던 치킨 버거에 대한 공포도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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