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anna Nov 17. 2020

나는 괜찮지 않았다

우울증 일기 3

    오랜만에 방문한 병원은 처음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와 같이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음을 진정할 틈도 없이 그렇게 진료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몇 년이 흘렀지만 나는 또다시 정신과 의사 앞 검은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세간이라곤 의사가 쓰고 있는 책상과 내가 앉아 있는 소파가 전부였기에 애꿎은 가방을 놓을 자리를 찾는 척하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요즘 별일 아닌 데 숨이 잘 안 쉬어지고 힘든 것 같아요." 


정신과에서 내 증상을 스스로 말하는 것은 항상 어색한 일이다. 단순히 '기침이 나요',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요'와 같이 내가 의사에게 전달해야 하는 뚜렷한 '증상'이라는 걸 스스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구구절절 얘기를 하기 십상이라 한두 마디 말을 던지고 의사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의사의 표정을 보니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버스에서 내려야 하는데 가방에 넣어 둔 우산이 안 보였어요. 분명히 가방에 넣었던 것 같은데. 찬찬히 찾으면 보일 텐데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고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그냥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이라 신경을 안 쓰려했는데 조금 전은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데 갑자기 같은 증상이 나타나서 너무 당황스러워요. 또 이런 증상이 나타날까 걱정이 돼서 왔어요."


의사는 내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내내 짧고 친절한 말투의 추임새를 반주로 넣어주며 이야기를 유도하면서도 펜을 쥔 손은 늘 그렇듯 바삐 움직였다.


"공황이라고 하기엔 아직 증상은 약합니다. 여기서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자꾸 스스로 의식하다 보면 공황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마음은 유달리 솔직해서 자꾸만 병이 생겨나는 걸까. '타고난 성격을 고칠 수는 없나요?'라는 말을 마른침과 함께 삼켰다.


"감사합니다."


마땅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진료실을 나왔다.

    병원과 같은 층에 위치한 약국에서 받은 봉투엔 왼쪽 구석에 '필요시'라고 쓰여 있었다. 분홍빛 알약이 반 알씩 밀봉되어 있었다. 지금도 가방에 항상 넣어 두고 다니는 신경안정제였다.

막상 평소 업무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일이 내 적성이라고 생각했고 급여나 회사 복지도 그 정도면 만족스러웠으며, 업무 성과도 봐줄 만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 분야로 직업을 선택하는 일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선택했던 길이 나에게 안정적인 일거리를 쥐여준 듯했다.

    나는 제약회사 제품들을 판매하는 일종의 도매업을 운영하는 회사의 개발팀에서 웹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쇼핑몰 웹사이트와 사내 백오피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IT 분야의 회사는 아니지만 개발팀의 비중이 꽤 높은 곳이었고, 나는 입사와 동시에 사이트 개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은 아니지만 같이 졸업한 동기들 중에는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거나 규모가 큰 회사들을 다닌 다는 소식을 적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작지만 기반이 탄탄한 회사였고, 장기근속한 직원들도 많은 곳이었다. 졸업 후 캄캄하기만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열심히 일하고 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잘 해내고 싶었다. 힘들게 취득한 석사 학위가 아무 소용이 없어 질지도 모르는 사실을 뒤로하고 나는 잘 해내야만 했다. 이번에는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구나 겪고 느끼는 흔한 일이라고 믿고 넘겼다.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난 괜찮고, 이겨낼 수 있고, 힘든 건 그저 핑계일 뿐이며, 하기 싫은 이유는 내가 의지박약이라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내가 의지박약이 되었는지, 왜 괜찮지 않은 건지, 별거 아닌 일이 힘들게 느껴지는지 나는 고뇌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마음은 더욱 곪아갔다.


    처음 정신과를 방문한 것은 스물다섯 살 겨울이었다. 나는 한 학기 조기졸업을 하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일 년 넘게 엇박자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나 동기가 거의 없었다. 나와 유일하게 같은 시기에 졸업한 친한 동생이자 친구는 가끔 나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어디 또 아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자주 아픈 허약 체질의 학생이었다. 얼굴이나 움직임을 보면 꾀병이 아님은 자명했지만 갈수록 학교에 얼굴을 비추는 시간이 줄어들자 때때로 따가운 시선도 느껴졌다.


"괜찮아. 피곤해서 집에 일찍 가려고."


    무릎까지 오는 두터운 검은색 퍼 코트를 칼라까지 세워 잠그고도 사시나무처럼 떨며 나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화장은 지워진 지 오래였고 차디찬 바람에 얼어붙은 눈물에 피부는 따가웠다. 아직도 그날 신은 신발과 어깨에 맨 가방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내 마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 차림이었다. 중요한 수업만 마치고 점심시간도 퇴근시간도 아닌 애매한 오후 시간에 탄 지하철은 한 칸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했다. 열차를 타고 가는 경로 중간엔 급한 곡선 코스가 종종 있었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어 가끔 계단을 오를 때도 어지러움을 느끼는 나는 조금이라도 속도가 느껴지는 곳에선 창밖을 보지 않고 눈을 감고 지나가길 기다리고는 했다. 그날은 한 번도 창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곡선 코스를 빠르게 지나가는 열차의 미세한 기울어짐을 느끼며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이대로 열차가 떨어져 죽게 되면 어떨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이전 03화 출근보단 퇴근이 힘들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