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금은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하거나 궂은일을 위로하기 위해 상대에게 주는 부조(扶助) 차원의 돈이다. 부조란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 도와주는 돈이나 물건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는 한꺼번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글쎄다. 자신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위해 미리 돈을 모아 놓고 결혼식이나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은 언제 결혼할지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런 날을 위해 미리 돈을 모아 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결혼과 죽음을 예측할 수 없어 상부상조 차원에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경조금이다.
지난해 딸을 결혼시키면서 축의금은 과연 얼마를 내는 것이 적정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공무원은 김영란법에 따라 오만 원 이상 낼 수가 없다.
딸의 방명록에 적힌 축의금을 확인해 보니 공무원은 삼만 원과 오만 원을 주로 내고, 친척들과 친구들은 오만 원과 십만 원을 낸다. 공무원은 오만 원 이상을 낼 수 없지만, 그간 친하게 지낸 직원에게는 어쩔 수 없이 십만 원을 낸다.
현실적으로 김영란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만 원은 너무 적은 것 같아서다. 축의금으로 얼마를 내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오만 원은 식대 값에 지나지 않아 축의금을 내고도 찝찝한 기분이 든다.
아버님과 장모님이 돌아가신 지도 십수 년이 되었다. 당시 부의금을 받은 것을 기록해 두었는데 액수를 살펴보면 주로 이만 원이나 삼만 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만 원이나 삼만 원을 내는 사람이 드물다.
직장에 다니면서 직원에게 경조금을 내는 것은, 나중에 그 직원에게 되돌려 받겠다는 의미로 내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함께 근무하면서 일종의 상부상조 차원에서 내는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낸 경조금을 적어놓고 나중에 퇴직하고 애경사가 생기면 수첩에 적힌 사람에게 애경사를 알린다. 우리나라 경조금 문화는 돈을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의 입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경조금을 받는 사람 위주로 생각해서 내다보니 금액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그렇다고 경조금에 대한 원칙을 정해 놓고 앞으로 얼마를 내라고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혼식에서 제일 많이 드는 비용은 식대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식사 접대를 해야 하는데 식대 수준에 따라 경조금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 경조금 문화에서 가장 개선해야 할 것은 식사를 없애는 것이다. 결혼식에서 식대를 없애면 축의금 액수도 줄어들고 그에 따른 부담도 덜하다.
이번에 딸의 결혼식에서 식대가 약 80%를 차지했다. 예식장 대관료와 사진 촬영비와 신부의 드레스에 지출된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
장례식도 마찬가지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문을 왔다고 식사를 반드시 대접할 필요가 있을까.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경조금 문화는 손도 대지 못하고 예식업자나 장례업자 손에 이끌려 가는 형국이 되고 만다.
그간 정부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하자는 운동을 펼쳐왔지만, 형식적인 구호에 그쳤다. 정부도 성공하지 못한 것을, 누군가가 나서서 경조금 문화를 개선하자고 외쳐보았자 따를 사람이 없다.
가정의례에서 허례허식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정작 본인이 그 당사자가 되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친구나 친척이나 직장 동료의 애경사에 부지런히 경조금을 냈다.
내가 낸 경조금은 되돌려 받을 수도 있고,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에게 애경사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경조금을 낸 사람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다. 경조금 문화 개선의 한계는 여기서 발생한다.
나만은 제외하고 아니면 나만 시행하고 개선하자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경조금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참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딸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받고 보니 축의금 액수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경조금을 적어도 5만 원은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딸 결혼식 축의금을 받고 보니 오만 원은 적어 보인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그 친구와 친구 아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경조금 액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오만 원이면 논 한 평 값인데 어떻게 매번 논 한 평 값을 경조금으로 내느냐며 너무 많다고 핏대를 세우고 반대했다. 농사짓는 친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일 년에 애경사가 한두 번도 아니고 한 달에 몇 건씩 있는데 그때마다 논 한 평 값을 내면 일 년에 논 몇 마지기 값을 경조금으로 내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경조금을 내기 위해 논을 팔고 나면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된다.
경조금은 결혼식 식대 값을 기준으로 하면 오만 원이 적어 보이지만, 농촌의 땅값을 기준으로 하면 오만 원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경조금을 내는 데 도시 사람 농촌 사람을 구분해서 받을 수도 없다. 이래저래 경조금을 내는 문화를 개선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오늘의 현실이다.
앞으로 친척이나 친구의 애경사가 생기면 얼마를 내야 할까. 제발 경조금을 많이 내는 시대가 다가오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에 딸 결혼식을 하면서 축의금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축의금은 미래에 갚아야 할 채무라지만 그나마 딸이 결혼해서 마음은 한결 가볍다. 직장을 퇴직하면 제일 부담 가는 것이 경조금이다. 경조금은 얼마를 내는 것이 합리적일까 하는 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