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by 이상역

세월이 유수와 같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계절은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간다. 태풍과 장맛비가 여름날을 맹폭하더니 아침저녁이면 서늘한 바람이 조곤조곤 불어온다.


서울의 집처럼 세종도 아침 새벽이면 새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는 듣지 못하다 선잠을 자거나 일찍 잠이 깬 날은 새소리가 크게 들려와 누워 있지 못할 정도다.


여름이 서산마루에 걸쳐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사무실에 출근하면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솟구친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집에 도착해도 또다시 몸에서 땀이 솟구친다.


민간기관인 협회에서 일을 하는데 공공기관과 일하는 방식과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공공기관은 철저한 계획을 세워 일을 하는데 이곳은 계획이 없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해서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매일 하는 일이 다르고 지시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지난주와 다음 주의 일을 작성해서 서로 논의를 거쳐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다.


그런데 협회는 그런 시스템이 갖추어 있지 않아 지난주에 무슨 일을 했는지 다음 주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예측할 수도 없고 무엇이 급한 일인지도 모르고 매사 일에 끌려 다니는 신세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는 판단은 할 수 없지만 일은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닐까. 협회에 그런 시스템을 갖추어 일하라고 말할 수 있입장이 아니라서 처신에도 한계가 따른다.


결국에 공공기관은 조직적으로 일을 하게 되고 협회는 조직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의해 일을 하게 된다. 협회는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으면 성장할 가능성이 엿보이지만 반대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업무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야 발전한다.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면 업무 발전은 한계에 다다른다. 며칠 전 협회 사람과 일하는 방식에 상당한 차이를 느껴서 그 자리를 피했다.


협회에서 일하는 방식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은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공직은 제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일이 이루어지는데 협회는 규정과 절차가 있으면서도 개인의 의사에 따라 일이 추진된다.

퇴근길에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데도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린다. 날씨가 변덕스럽고 하루에도 비가 내리고 햇빛이 반짝이는 계절이다.


가랑비를 맞으며 집에 도착해서 하루를 정리하는 중이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을 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처할 때면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계절은 처서를 지나 백로를 향해 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말복의 중심에 서서 땀만 열심히 흘리는 형국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모든 시간이 정지한 듯이 다가오고 그런 상태에서 마음은 상념의 나래를 펼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에 홀로 앉아 있으니 시선은 저절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아직도 가슴에는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찜찜한 상태로 남아 있다. 마음의 체를 이용해서 그 앙금을 걸러내고 싶은 심정이다.


이 세상은 어디서 근무하든 사람이나 업무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온 마음을 다해서 하지 않으면 찜찜한 무언가가 가슴에 남게 된다.


내 가슴에 아직도 찜찜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결과다. 오늘이 가기 전에 묶은 감정과 기분은 훨훨 털어내고 내일은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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