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우는 밤

by 이상역

가을의 한자 ‘추(秋)’는 ‘벼화’와 ‘귀뚜라미’의 합성어다. 秋자에 붙어있는 화(火) 자는 원래 귀뚜라미 모습으로 획이 복잡해 火자로 변한 것이다. ‘불’과는 상관이 없다.


가을추(秋)의 한자어처럼 가을은 벼를 수확하고 귀뚜라미 우는 계절이다. 아침에 구봉산을 걸어서 올라가는데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온다.


귀뚜라미는 여름에도 울었지만 매미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다가 매미 소리가 잦아드니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교향곡처럼 잔잔하게 울어댄다.


가을이 어갈수록 매미 소리는 사라지고 풀벌레가 숲에서 관현악을 연주하듯 평화롭게 계곡이나 집 주변에 울려 퍼질 것이다.


어젯밤에 여름 내내 밤새워 울어대던 매미 소리는 사라지고 귀뚜라미와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가을이 좋은 것은 풀벌레 소리와 함께 우수에 젖어드는 고독함이다.


매미가 울거나 귀뚜라미가 우는 것은 사랑을 찾기 위한 세레나데이다. 가을이 계절의 바람을 타고 여물어 갈수록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소리는 찬 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


가을밤은 풀벌레 우는 소리의 청아함과 기온이 낮아지며 찾아오는 고요로 인해 고독은 깊어간다. 구봉산을 한 바퀴 돌아가는데 아침 햇살이 비추는 따뜻한 곳에서만 매미가 운다.


가을에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의 가슴에 고독이 찾아든다. 여름날에 한창 무덥다가 기온이 낮아지면서 마음이 가라앉고 그 빈 공간에 고독이 피어나고 밤 사위가 어두워갈수록 생각도 미로를 향해 영글어 간다.


가을의 대명사인 단풍은 아직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 의미를 알기나 한 듯이 풀벌레가 계절의 골목을 지키고 사람에게 수확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소리로 알려준다.


구봉산 등산을 마치고 승상산을 올라가는데 땀이 나지 않는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몸에 들어선 것처럼 기분이 좋다. 산속에 들어서도 매미 소리는 확연히 줄어들었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어 춤을 춘다.


가을이 귀뚜라미와 풀벌레 우는 소리로 여물어만 간다. 벌레 우는 밤이나 가을밤이나 가을은 사람의 가슴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에 대한 동경과 고독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설렘을 일게 한다.


가을밤에 풀벌레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올수록 사람은 지나간 가을과 다가오는 가을을 생각하게 된다. 지나간 가을에 이루지 못한 것을 다가오는 가을에는 꼭 이루리라 마음을 다져 잡아본다.


벌레 우는 가을밤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나 한통 써서 보내고 싶다. 우리 가족과 형제들 모두 무사히 잘 지내고 있고, 어머니도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며 건강하게 잘 계시다는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시는 그곳에서 무더운 여름 잘 이겨내고 주변에 계시는 이웃들과 잘 지내시고 있는지 하는 궁금한 소식을 전해 듣고 싶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가을이 되니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사람이 고독해진다는 것일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고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 보고 싶은 마음이 그리움이 되듯이 추석에는 아버지 산소에 가서 절을 올리며 투정과 응석이라도 부려보고 싶다.


나이 들어갈수록 남들의 투정이나 응석은 받아주고 다독여주는데 누구에게 자신의 투정이나 응석은 부릴 데가 없다. 나이 들었다고 이런저런 눈치가 보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삶에서 투정과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참 행복한 축복이다. 부모님에게 응석 부리고 투정을 부릴 수 있다것은 생의 시절이고 한 시기이다.


나이 듦은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하고 나잇값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응석과 투정을 부릴 데가 없다. 배우자나 친구에게 할 수도 없고 나이 어린 가족에게도수가 없다.


부모님과 성장하던 시절을 돌아보니 그 시절이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나이 들어 부모의 위치로 삶이 바뀌니 부모님과 살아온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가서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에게 성장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깊어가는 가을밤의 진한 향수나 실컷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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