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그림자

by 이상역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詩人의 말처럼 사람은 본래 고독한 존재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독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삶은 살아가고 살아내는 일 자체가 고독을 참고 견디며 버텨내는 일이다.


삶과 고독은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삶에 고독이 깃들어 있는 것이지 고독이 삶을 벗어나서 홀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길을 걸어가는데 가로수에서 나뭇잎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떨어지는 모습이 고독하게 들어온다. 가로수가 싹을 틔워 성장할 때는 고독한 시간이 자리할 틈새가 없었는데 생명을 마치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낙엽의 뒤태에는 고독이 진득하게 깔려 있다.


그간 딸의 결혼 준비와 결혼식 관계로 사무실 텃밭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모처럼 사무실에 출근해서 텃밭에 올라가보았다.


텃밭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풀은 자라서 무성해졌고, 채소도 웃자라 키재기를 하고 있다. 태풍으로 인해 고춧대와 방울토마토가 쓰러지고, 고랑마다 풀이 무성해서 발을 내디딜 수 없을 정도다.


방울토마토는 쓰러진 채 곁순이 웃자라 본 대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라 서로 아우성이고, 고추와 가지는 뒤엉켜 쓰러져서 서로 자기를 먼저 구해달라고 소리친다.


봄날에는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고대하며 텃밭을 열심히 가꾸고 관리했는데 막상 가을에 며칠 손을 놓았더니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텃밭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싶지는 않다.


며칠 지나면 무서리가 내릴 텐데 굳이 텃밭에 풀을 뽑아 주고 관리해보았자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아서다. 앞으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텃밭에 올라와 채소를 보살펴야 할 것 같다.


비록 텃밭에 풀은 무성하지만 수확할 것은 거두고, 먹지 못하는 것은 뽑아내야 한다. 채소는 가을 햇살을 받아 나날이 여물어 가고, 바람은 텃밭의 울타리를 비슬비슬거리며 산자락을 향해 불어 간다.


집에서도 딸이 출가하자 딸이 사용하던 빈 방에서 쓸쓸한 기운이 묻어난다. 딸이 출가하면 집안이 쓸쓸해진다는데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동안 딸이 집에 있을 때는 고독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방이 텅 비어버리자 쓸쓸함과 허전함이 밀려온다. 아직도 딸이 출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방은 비워 그대로 두고 있다.


시집간 딸이 언제든지 집에 와서 편히 쉬고 갈 수 있도록 비워 둔 것이다. 이참에 집이라도 수리해서 넓게 살고 싶지만, 딸이 남긴 흔적과 여운을 지울 수가 없어 비워 두고 지낸다.


가끔 딸이 저녁에 불쑥 찾아와서 자기 방에서 자고 가는 날이면 고독함과 허전함은 사라진다. 그나마 딸이 옆 동네에 살고 있어 그리움보다는 보고 싶을 때 자주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신세다.


가을이 되면 고독을 타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다. 텃밭의 무성한 풀처럼 삶도 너절하게 느껴지는 하루다. 산 그림자가 산에서 지내는 것이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고, 교회당 종소리도 외로워서 멀리멀리 울려 퍼지는 계절이다.


내가 태어난 날도 오늘처럼 고독하고 쓸쓸했을까. 직장을 퇴직할 나이가 되어가자 삶이 무심하고 쓸쓸하게 다가오는 나날의 연속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독이 주변을 서성거리다 기회만 되면 머리를 불쑥불쑥 디밀고 찾아온다. 이 세상에 고독하지 않은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을에는 고독을 찾아서 문밖을 서성이지 말고 가슴에 조용히 끌어안고 지내는 것이 참다운 삶이다. 삶의 주변 곳곳에 고독이 자라고, 고독이 성장한다.


고독한 계절에는 주변과 어우렁더우렁 지내며 사는 것이 고독을 극복하고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오늘따라 고독을 더 타는 것 같고, 왠지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이 어울려 보이는 이상한 날이다.

keyword
이전 12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