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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사과, Apple] 이야기.

by 길고영

백설공주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이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사과 씨에는 ‘시안화수소’라는 자연 독소가 들어 있고, 씨앗 100g을 먹으면 실제로 위험할 수 있다. 자연계에는 영양 성분이면서도, 용량과 용법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물질들이 숨어 있다.


업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코스타리카 잎’ 추출물의 효능을 평가하는 일을 했다. 기업 연구소가 아닌 기관 연구소였으니 최신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었을지 모른다. 효능이 확인되면 추출물 속 유효물질을 찾아내고 구조를 밝히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바다 건너 먼 나라의 나무 잎에서, 때로는 동의보감 속 약초에서 약이 될 성분을 찾는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연구의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작년에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제는 약효를 내는 분자의 구조와, 우리 몸을 이루는 단백질의 구조를 나란히 놓고, 더 정교한 약물을 설계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비만 치료제는 분자 단위의 정교한 조절이 아니라, [소화기계]/[신경계]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포만감을 유도하는 호르몬, GLP-1을 활용한 주사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맞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부작용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아직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영역보다는, 약과 독의 경계에 머무르기를 나는 택한다. 호르몬 주사 대신 토마토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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