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맹드 Mar 23. 2023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1인 가구의 보통날(3/3)

집안일이라 쓰고, 마음수양이라 읽는다.
안 해본 자는 절대 알리 없는
그 도 닦는 세계.

     나는 아내가 없지만 남편도 없다. 돈 버는 바깥양반도 나고, 집안일하는 도 나다.

동거인이 전혀 없기에, 동거인에 의해 영향받는 바 또한 없다. 그래서 덕 보는 때도 없고, 독박 쓰는 경우도 없다.


오로지 내 선택과 내 행위에 의해서 모든 결과가 초래된다.


그래도, 싸움은 일어난다. 나는 나랑 싸운다.

지금 비울까 말까. 지금 돌릴까 말까 실랑이한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가전이 늘어났다.  간살이도 늘었다. 그들이 처음엔 안일 동지 같았다. 전쟁을 함께 할 전우로 느껴졌다. 

하지만 살다 보니 내가  아래 계급인 것 같다. 밀당하고 눈치 보며 산다.


베란다에서 건조기 알림음이 울린다. 다 됐다는 신호다.

'지금 당장 안 빼도 구겨질 옷은 몇 개 없어.

내일 아침에 하자.'

피곤한 나는 성실한 나를 이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건조기에 있던 옷 중 몇 개는 아무래도 스타일러에 따로 넣어야 할 것 같다.

스타일러 문을 열자, 어제 퇴근 후 벗어놓은 옷들과 마주친다.

휴. 얘네를 먼저 빼야 할 거 아냐.

옷장 옷걸이에 넣어두고 구겨진 셔츠를 스타일러에 건다.

돌리려는 순. 간.

'물이 없습니다'

물탱크 두  나를 노려본다.

싱크대로 가져가, 한 개는 비우고 다른 한 개는 채운다.


세탁 건조기의 필터는 다음번 사용을 위해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먼지뭉치를 버리러 쓰레기통을 열어보면 '언제 또 그새 찼냐.' 싶다.

'비워 말아' 갈등하는 동안 손은 이미 갈아 끼우고 있다.

바닥에 먼지가 떨어지는 걸 목격하고 말았다. 

청소기를 갖고 와 왱~, 물걸레 키트로 갈아 끼우곤 다시 왱~ 돌린다.


물걸레를 분리해 빤다. 청소기 먼지통은 수세미로 박박, 건조기 필터는 솔로 살살 문지른다.

그러면 한 시간이 지나있다.

나는 힘든데 집구석은 너무 평화롭다.
분명 상쾌한데 힘에 부친다.
가전이 아무래도 나를 부려먹는 것 같다...



냉장고 청소하던 날

이쯤 되면 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산다는 건 절대 고상하지 않다.
산다는 건 꽤 구질스럽다.


어느 스님이

'인생은 밥 먹고 똥 싸는 일의 반복'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같다.


고대 철학자들은 과연 옷을 직접 빨아 입었을까?

본인 집 마당은 본인이 쓸고, 본인 밥그릇은 직접 씻었을까?


만약 아니라면 그들의 얘기는 모두 개소리다.

인간 본질 대한 탐구는

삶은 구질스럽다는 걸 먼저 아는데서 출발해야 하니 말이다.




이전 11화 도서관은 약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