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결혼은 하기 싫었다.
혼자 살 생각이었던 나는 결혼 모드로 전환 후 일정 시간 과도기를 겪었다. 그런 대혼란 이후 찾아온 것은 안정감이었다.
결혼하면 1년 내도록 이런 질문을 듣는다.
"결혼하니까 좋아?"
그럼 난 이렇게 말한다.
"항상 좋진 않지만, 대체로 좋아."
"뭐가 제일 좋은데?"
"글쎄. 안정감?
그리고 등 긁어줄 사람이 있다는 거?"
안정감이라는 건 병원 가서 처방받을 수 있는 연고도 아니고, 쿠팡에서 주문할 수 있는 냉동식품도 아니었다. 타인에 의해 획득될 수 없는, 내게는 절대 닿지 않을 것 같은 멀고 먼 정서였다. 안정감이 빠진 자리에는 성취감이나 보람됨 같은 자기 효능감으로 채워나갔다.
3년 전 집을 사면서 가까스로 '안정'에 조금 가까워지긴 했었다. 내 이름이 적힌 등기부등본은 '안정 획득 증서' 같은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의 책임과 의무뿐만 아니라 권리와 혜택 또한 온전히 내가 누린다는 그 짜릿한 자본주의 논리가 이 집을 관통해 드디어 나에게 왔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게 행복했다.
혼자 살려고 겁 없이 집도 산 내가
뭐가 무섭겠나.
같이 살기로 한 후 내가 그에게 소망한 것은 딱 하나.
내가 하고자 한 일, 결혼 후 내 몫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내 곁에서 힘과 용기를 주길 바랐다.
선연한 노을처럼 여유가 되길 바랐다.
나의 짐을 그가 대신 짊어지도록 할 큰 그림이나 이기심은 내게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소망을
그가 충실히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결혼 후 안정감은 자연스럽게 획득되었다.
신혼생활의 맛은 겨울날 그를 안고 있을 때다.
살집이 많고 몸이 따뜻한 신랑을 소파에 나란히 눕혀 내 온몸으로 안고 있으면 세상의 온갖 시름이 다 잊힌다. 45W 고속충전기에 배터리 다 된 휴대폰을 꽂은 듯 내 에너지가 차오른다.
그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하는 대신 나는 그를 꼭 껴안는다. 처음엔 양팔로 그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그러곤 얼굴을 그의 살집 두둑한 가슴팍으로 돌진한다. 그와 나의 들숨날숨에 내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나를 빡치게 했던 개떡 같은 고객사의 전화나 지하철에서 괴롭게 숨을 참던 오늘의 순간들이 기억에서 점점 옅어진다.
더 따뜻한 영역을 찾기 위해 가장 찬 부위인 발가락을 쫑긋 세워 그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이리저리 비벼댄다.
"차가워 여보" 소심한 방어나 "꺄악" 같은 웃음 섞인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힘으로 날 누르지 않고 '될 대로 되어라' 그대로 당해주는 착한 신랑이다.
'이 사람은 심장도 나보다 훨씬 크겠지', '뚱뚱하니 역시 안을 맛이 나는군' 같은 정복자다운 생각을 하다가 두툼한 그의 입술에 뽀뽀를 두 번 하고 정복자답게 쿨하게 일어난다.
"충전 다 됐업!"
그리고 곧장 나는 내 할 일을 마저 하러 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길을 간다.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옷장정리를 하고, 머리를 감으러 간다.
나는 지금을 잘 지내기 위해
혼자였던 시간이 내게 먼저 왔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강연자가 말하듯, 발레의 가장 어려운 단계는 솔로 무대가 아닌 듀엣 무대라고 하는 것처럼, 기혼은 끊임없는 배움과 적응이 요구되는 삶의 형태이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가 가장 적절한 때에 만났다.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쌀은 익어 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긴 뜸들임 뒤에 증기를 후-하고 아주 길게 내뿜는 전기밥솥처럼 우리는
오래참은 숨을 그렇게 내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