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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천안댁이 되다(1)

어리석은 결혼은 하기 싫었다.

by 기맹드

1월에 상견례를 치르고 나니

결혼식, 신혼여행, 살림 합치기 등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결혼은,
거대한 문명의 충돌이었다.

T는 세종시, 난 강남역으로 출퇴근을 한다.

용인에 집이 있지만, 둘이 살기엔 좁았다.

신혼 효과로 꼭 껴안고 살 수는 있겠으나

그것도 한때일 거란 냉정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우리의 대안은 두 가지.

첫째, 천안에 집을 구한다.

둘째, 주말부부로 지낸다.

"주말부부는 안돼.
사랑하기도 바빠.
사이가 소원해질 수 있어."


T는 은행원이라 출퇴근 시간이 소위 '빡세다'.

나는 다행히 유연근무제가 자리 잡힌 회사이고,

업무 특성상 지방 출장도 잦기에,

가 좀 더 양보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했다.

힘든 선택을 자처한 내가 꽤 멋있게 느껴졌다.

'하면 되지 뭐. 별거 없을 거야.'



천안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나는 매일 기차로,

T는 자가용으로 편도 30분 거리를 오갔다.


T는 역시 마누라를 잘 만났다며,

대승적 결단을 내린 나에게 고마워했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 고마움의 대가로

가끔 나의 생색과 투정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본인의 운명을...



내가 아무리 출장이 잦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사무실로 출근해야 한다.

천안에서 강남역까지

최소한의 에너지&비용으로

최대한 편하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코 기차(SRT)였다.


고속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도 타보고,

자가용도 끌고 가보았지만,

버스는 답답해서 진이 빠졌,

차는 기름값과 교통체증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SRT를 타는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하면 door to door기준

1시간 50분이 소요되었다.


티켓창이 매일 열린다. 나는 한달뒤 티켓을 매일 산다.


하지만,

제아무리 합리적이라 예상했던 대안도

막상 겪어보면 센 놈일 수 있다.

쳐맞기 전에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타이슨이 얘기했다...


기차 출퇴근이 2주 이상 지속되자,

정신적 · 육체적 피로가 어마무시했다.

난생처음 겪는 하드코어 출퇴근에

나는 마음 넓은 아내이기를

잠시 포기하였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가 알아주길 바랐다.


T에게 나의 피곤함과 불편한 마음을
세련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설거지를 자주 미룬다'와 같은

억지반 진실반의 날 선 얘기들로

T를 선제공격했다.


T는 나의 공격을 수비로 잘 받아내다가

마지막에 스매싱을 강하게 날렸다.


그도 그럴 것이,

T도 난생처음 겪는 2인 가구 생활에

적응 중이었고,

때마침 밀려드는 은행업무에 치여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집에서도 공격당하니

아무리 탄력성 좋은 그라도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좋아. 그럼 그냥 용인 가서 살자.
아니, 용인 말고 서울 가서 살자!
내가 세종으로 출퇴근할게!"


해결책이랍시고 화풀이하듯 내놓은

저 대답이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

내가 원한건 저게 아니었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연애하고 같이 살면서
가장 심각하게 싸웠던 때가 그때이다.

나는 처음으로 울었고,
T는 우는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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