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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23. 2021

내가 회사원이었을 때

회사원이었을 때 나는 회식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는 밤새 엄마가 가져다준 대야에 토를 하면서 똑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며 운 적이 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입에서 무한 재생된 그 말은 “내가 왜!”였던 것 같다. 내가 왜 이 꼴로 살아야 해였는지, 내가 왜 술을 마셔야 해였는지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걸 지켜보고 있던 엄마는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안해서 그 후로 물어본 적은 없다.


야근보다 회식이 잦던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80만 원짜리 정장을 구입했다. 둘째로 태어난 나는 두 살 터울인 언니를 때로는 모방하고 때로는 반면교사 삼아 인생을 편하게 살고 있었는데 사회라는 험난한 세상 속에는 어쩌다 보니 언니보다 먼저 뛰어들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엄마도 이 사회라는 것에 대해 나만큼이나 아는 게 없었고 엄마와 나는 팔짱을 끼고 백화점에 가서 밋밋하기 그지없는 짙은 감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매장 언니의 수완에 휘말려 80만 원이나 주고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와 나 둘 다 말이 없었다. 뭔가 찜찜하긴 했는데 그걸 누가 먼저 터뜨릴 것인지 서로 눈치만 보는 분위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IMF로 아빠가 실직하면서 우리 집은 얼마간의 타격을 입었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으나 엄마 아빠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의 흐름으로 나는 우리 집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을 실감했다. 늘 상위권을 맴돌던 언니가 재수를 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침체되었고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엄마가 번역 아르바이트나 학원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나는 자꾸만 엄마의 기분을,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런 시간은 대학 시절 내내 이어졌는데 언니처럼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실력이 되지 못한 나는 아르바이트로 내 용돈을 벌어 쓰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채웠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비싼 정장을 사고 집에 오는 길이 내내 불편했던 건. 결국 엄마와 나는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밋밋한 감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환불하고 다른 곳에 가서 조금은 나다운 옷을 다시 사 갖고 돌아왔다. 그 옷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엄마와 나 둘 다 흡족한 쇼핑으로 인정한 걸로 보아 제 값을 했었나 보다. 사실 나는 정장이라는 옷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주중의 갑옷 같던 정장을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다. 일주일 중 이틀밖에 되지 않는 주말을 위해 비싼 청바지를 구입하며 정장 속에서 갑갑했을 주중의 내 몸을 보듬어주는 게 회사 생활이 유일한 낙 중 하나였다.


회사를 그만둔 뒤로는 정장을 입을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정장, 하면 그때가 생각난다. 새로운 생활을 향해 약간은 들떠 있던 나와 집안 사정이 어떻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나에게 좋은 옷을 입혀 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약간은 기죽은 채로 사회를 향했던 나의 어설픈 발걸음과 그 후 회사에서 겪었던 무수히 많은 비정상적인 일들도.


부러 정장을 입고 일하는 프리랜서도 있지만 나에게 그건 제 발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일이나 다름없다. 느슨해질 수 있는 프리랜서의 특성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화장도 곱게 하고 옷도 차려 입고 일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는 것인데 나는 편안한 옷을 두고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에게 불편함을 강요해야 할 만큼 의지가 없는 인간은 아닌지라 편안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특혜를 마음껏 즐기는 편이다. 정장과 세트처럼 신고 다니던 발 아픈 하이힐도 신발장에서 사라진 지 6년이 다 되어간다. 퉁퉁 부은 다리와 발 때문에 20대에도 늘 피로에 절어 살던 나는 이제 마흔이지만 그때보다 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한다.


화장실에 맘 편히 갈 수 있는 것도 회사를 그만둔 이후 찾아온 축복 같은 일이다.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 들렸어>에서 도대체 작가는 방귀 얘기를 정말 감칠맛나게 하는데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른 분들에게 자신의 과민한 장에 대해 언급하며 오늘 밤 방귀가 많이 나올 것 같으니 양해 부탁한다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한다. 그런데 이 기회를 이용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녀는 자신의 방귀가 아닌 방귀의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내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약간 배신감이 든 밤이었다는 그 에피소드를 어찌 낄낄거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나는 남의 방귀 냄새를 안 맡아도 되어서 좋았다. 지옥철 안이나 회의실에처럼 꼼짝없이 한 자리에서 특정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범인을 알 수 없는 방귀 냄새만큼 정체된 공기를 오염시키는 건 없었다. 굳이 방귀 냄새가 아니라도 양복 재킷에 묻은 담배 냄새나 전날 밤 마신 술, 혹은 점심에 반주로 걸친 술 냄새가 공기 중을 떠도는 환경은 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집에서 혼자 일하게 된 이후 나는 쾌적한 공기 속에 일할 수 있음에 무한 감사했다. 물론 아이들의 응가 냄새로 잠시 공기가 오염될 때는 있지만 내 자식의 응가 냄새와 타인의 온갖 체취는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레벨이 다르단 건 말 안 해도 알 거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여직원 회식이란 것도 있었다. 여직원들의 고충을 듣는 알흠답고 생산적인 자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못된 것만 배운 여상사가 여직원들을 모아 놓고 술만 진탕 마시는 시간으로 우리는 반쯤 마시고 반쯤 흘려버린 술을 법인카드로 긁고 도망치듯 그 비생산적인 자리를 빠져나왔다. 모든 회사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에게 회사는 정치와 술로 점철된 꾀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언젠가 내가 시트콤을 쓴다면 그때 마주한 무수한 사람과 에피소드를 그 안에 담아낼 계획은 아직도 유효하다.


나는 이제 술 마시고 토하지도, 울면서 주정을 부리지도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내가 좋아하는 모스카토 와인을 식전에 혹은 반주로 한두 잔 마시고 조용히 잔다. 정장이 아닌 헐렁한 평상복을 입고 브래지어 따위는 하지 않은 채로 담배와 술 냄새 없는 내 책상에서 일한다. 그건 절대로 작은 행복이 아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프리랜서로 일할 거다.


https://taling.me/Talent/Detail/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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