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사는 집 01> 그리움으로 나를 갉아먹고 싶지 않아서
가끔 아빠랑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아빠는 장난처럼 말했다.
“우리 둘째 딸 나중에 잘 되면 아빠 집 한 채 사줘”
하지만 나는 아빠에게 집 한 채 사줄 정도의 능력은 아직 없다. 여전히 전세살이를 하고 있고 회사원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 가기도 바쁘다. 도대체 내가 버는 그 돈이 다 어디로 사라지는지 의문이지만, 딱히 엄청나게 쓰는 것도 없다. 그래. 인정하자. 이것이 애 둘을 키우는 아줌마의 팍팍한 현실이라고.
하지만 더 팍팍하다 못해 슬픈 사실은 내가 무언가를 주고 싶어도, 아빠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거다. 아빠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부부동반으로 놀러 가신 거제도에서 심근경색이 왔고, 너무도 건강했던 아빠는 그 자리에서 한 순간 돌아가셨다. 서울에 있던 나는 새벽 2시에 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대”란 거짓말 같은 말을 전해 들었다. 급히 청주로 내려간 나는 거제도에서 막 도착한 앰뷸런스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빠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었고 너무 평안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아빠는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죽음’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단 일부러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음’하면 떠오르는 뭔가 싸한, 깊은 바다로 툭 떨어지는 듯한 먹먹한 기분이 싫었다.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이 내게는 절대 찾아오지 않으리라 믿었고, 그런 부정적인 느낌을 떠안고 살아갈 시간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이미 일어난 사실이다. 아빠는 돌아가셨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했던 나의 아빠는 이제 이 세상엔 없다.
하지만 난 그 죽음이 제발 신파로 흘러가지 않길 바란다. 아빠를 떠나보낸 몇 달은 지독히 고통스럽고 세상과 섞이기 싫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웠지만, 그 시간을 서서히 들여다보며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아빠도 마음이 좋지 않을 거라고. 아빠를 기억할 때 ‘슬픔’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더더욱 원치 않을 거라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지 말자. 아빠의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우주 속 먼지로 흩어버리지 말자. 아빠와의 추억을 되살려 보자. 내 삶에 기분 좋은 영향을 미친 그 선명한 조각들을 있는 힘껏 두 손으로 끌어 모아 보자.
맞다. 이 이야기는 그 조각들의 모음이자 내가 글로 지은 ‘집’이다. 이것은 아빠 특유의 말, 냄새, 온기가 몰랑몰랑 살아있는 ‘우리 아빠가 사는 집’이기도 하다. 나는 그 속에서 아빠를 영원히 숨 쉬게 하고 싶었다. “아빠, 드디어 내가 집을 만들었지?”하며 깜짝 선물도 주고, “아빠 우리 이런 일도 있었잖아!”하고 두고두고 함께 쳐다보고 싶었다. 아마 나는 이 집을 수시로 드나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멍하니 사진첩을 들여다보느니, 이 집을 더 살뜰히 관리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내 기억도 언젠가 시간이란 놈에 하나씩 옅어지기 전에 어서, 빨리, 최선을 다해 이 집을 완성하고 싶었다.
언젠가 아빠가 꿈에서 나타났다. 칠순 생일 케이크를 올려드린 날, 아빠는 고깔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고 계셨다. 나도 그에게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쪽과 저쪽의 세상은 분명 갈라졌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그 세상의 경계까지 넘어 불쑥 현실의 우리에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