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사는 집 09> 단지 우리는 다를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내가 한 가지 착각했던 것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아빠를 사랑한다"라고 믿었던 거다. 엄마와 언니는 속정이 많고 표현이 많지 않은 성격인데, 언제부턴가 그 성격을 그대로 인정한다기보다 '그래서 내가 더 아빠를 사랑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한동안 별난 행동을 했다. 특히 언니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엄마는 거의 쓰러져 계셨고), 나는 화장이 나을지 매장이 나을지의 결정 앞에서도 언니와 계속 부딪혔다. 상황 상 전자가 더 좋고, 자주 찾아뵙기도 좋다고 언니가 설득했지만, 괜히 울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아빠는 그런 걸 원치 않으실 거야. 내가 더 잘 알아!"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물론 아빠가 무얼 더 원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직접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제일 아빠의 마음을 잘 안다고 우기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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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나는 두 살 터울이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는 참 의젓하고 모든 것을 잘했다. 우리 집에서 언니의 성장 에피소드에 관한 것은 거의 100프로 미담처럼 전해진다. 가령 언니가 세 살 때, 내가 방 안에서 막 울고 있자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전 괜찮으니 동생에게 가보세요" (믿지 못하겠지만 진실이다)
그것뿐이겠는가. 언니는 속 한번 크게 썩이는 적 없이 공부도 정말 잘했다. 학창 시절엔 학력 왕을 받아 상품으로 코끼리 조각상을 2개나 받았는데 (당시 학교에서 코끼리 조각상 2개를 받은 이는 언니가 거의 최초였다) 나는 은근 배알이 꼴렸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코끼리 상을 보며 생각했다. "저거 확 깨트리면 어떻게 될까?" 지금 봐도 사진 속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 각이 잡힌 모습이다. 특히 표정이 계속 어른이었다.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는, 편안한 모랫발 감성의 표정.
반대로 나는 6살 때부터 가출을 한다고 난리를 치거나, 슈퍼맨이 되겠다고 보자기를 쓰고 뛰어내린 아이었으니, (게다가 공부도 안 하고 늘 도망갔다) 엄마는 물론이요 아빠는 언제나 내 독차지였다. 어떻게 하면 더 엉뚱한 짓을 해서 관심을 끌 수 있을까가 늘 머릿속에 있었기에, 행동 하나를 하면 "아빠! 이것 좀 보세요!" 하며 막 홍보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박장대소를 했고, 언니는 내 행동을 보고 같이 웃거나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와 매일 전화를 하고 팔짱을 끼는 건 나였고, 언니는 "아빠가 승주를 참 사랑하지"라며 함께 추켜세워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내 행동이 스스로 익숙해질수록,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그런 생각이 고착되었나 보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날 예뻐해. 그리고 나도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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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은 한 가족의 비극 앞에 얼마나 유치하고 유치한가.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중간중간 언니와 나는 계속 부딪혔다. (사실은 내가 계속 들이받았다) 언니는 늘 "엄마가 가장 힘들 테니,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으로 고민하자"였고, 나는 "아빠는 이걸 원했을 거야"의 다소 떼쓰기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초기의 힘든 시간을 어떻게 지나고 보니, 언니는 말만 주억거리는 나 대신에 모든 걸 정리하고 있었다. 아빠 사망신고 및 행정처리, 재산정리, 청주 집에 가서 주기적으로 청소하기, 장례식에 오신 아빠 친구분들께 개인적으로 인사하기 등. 그리고 나무 광명진언을 (불교에서 영가를 극락으로 안내하는 주문) 외우면 좋다고 하자, 매일 수십 번씩 필사까지 시작했다. 꽉 채운 노트만 몇 권이 되었을 거다. 반면 언니가 이 많은 일들을 처리하는 그 시간, 나는 집에서 계속 울거나 누워만 있었다. 혹은 엄마와 별것 아닌 것으로 부딪히며 애먼 짜증을 냈다. 내 마음속엔 이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아빠는 날 제일 사랑해. 그래서 내가 제일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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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49재를 치르고 내려오던 날,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는 아주 좋은 곳에 가셨다. 난 확실히 알 수 있어. 내가 계속 기도를 했는데 아빠 얼굴이 점점 젊어지더라. 나보다도 젊었어.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었는데 말이야. 할아버지는 아빠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계셨어. 할머니는 쪽을 지고 손을 모으고 계셨고. 가족의 모습이 아주 화목해 보였어"
그리고 언니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너도 정말 고생했다. 아빠는 평소에도 나와는 엄마와 너를 잘 부탁한다고 많이 말씀하셨어. 그래서 아빠랑 이런 이야기도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도 많이 했지. 엄마랑 너는 여리고 감성적이니까 내가 첫째 딸로서 잘 보살펴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첫째 딸로서 항상 듬직하게 가족들을 챙겨야 한다고"
순간, 깨달았다. 그동안의 나의 행동은 그야말로 투정쟁이 막내딸의 모습이었다고. 나만큼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아빠에 대한 언니의 사랑을 재단하려고 했던 게, 너무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사랑의 방식은 자식 간에도 다른 거였다. 아빠가 날 사랑한 방식과 언니를 사랑한 방식이 너무 달랐듯,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껏 그런 사실조차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나는 언니에게 아무 대꾸도 못하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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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중에 "당신이 주인공이 되는 사이..."의 콘셉트로 주인공이 아닌 사람의 시선에서 풀어낸 보험광고가 있다. 도둑을 잡으려던 특수요원 주인공이 시민의 차를 타고 쫓아가자, 남은 시민이 뺏긴 차를 보며 허탈해하는 스토리 같은 것 말이다. 아마 언니와 나의 상황도 이런 광고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아빠에게 누구보다 애착을 갖고 주목을 받는 주인공이 되는 사이, 그걸 군소리 없이 지켜보며 제 할 일을 하는 언니가 뒤에 있었다.
아빠가 안 계신 요즘, 언니와 나는 엄마를 챙기는 것이 일 순위가 되었고 나는 아빠에게 못다 한 사랑을 엄마에게 올곧이 쏟아붓고 있다. 누군가에게 받는 것만 익숙했던 내가, 그 반대의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도 참 장족의 발전일 거다. 아빠는 내가 웃긴 말을 할 때마다 늘 숟가락으로 머리를 치는 시늉을 했는데, 만약 이 철없던 막내딸의 드라마틱한 변신을 보면 이런 행동과 말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숟가락을 들고 머리를 치는 시늉) 으이그, 그 마음을 이제야 알았어? 하여튼 너 언제 진짜 철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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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언니와 서로 안부 문자를 주고받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이빠가 안 계시더라도 속이 꽉 찬 언니가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슬픔을 같이 나누고 무엇보다 서로 보듬어줄 수 있어서 정말 천군만마처럼 든든하다고.